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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호 Vol.17 - 박소란



 그냥 걸었다는 말 

  박소란






 담장 너머 버드러진 가지에 새까만 열매들이 매달려 있다  

 너무 징그럽다 누군가 슬쩍 미간을 찡그리고 
 이야 엄청 열렸네 누군가는 입을 헤벌리고 목을 길게 빼고 

 쥐똥나무라는 거야 누군가는 다정히 일러 준다  
 진짜?
 누군가는 조그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한참을 그 자리 그대로 멈춰 서 있기도, 
 때 묻은 햇살이 빵빵거리며 들락거리는 곳에 
 알 수 없는 악취가 가시지 않는 곳에 

 나는 괜히 신기해서 
 쥐똥나무가 여기 있다는 게 
 이토록 자질구레한 것들이 안간힘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쩌면 인연일까? 묻게 된다 
 쥐똥, 쥐똥, 쌉싸름한 글자들을 하릴없이 우물거리면서 

 전화를 걸게 된다 
 오래 그리웠던 이에게 
 쥐똥나무라고 알아요 혹시? 알알이 쏟아지는 마음을 간신히 그러쥐면서
 글쎄 갸우뚱거리는 저편의 누군가는 
 눈앞에 놓인 이면지에 무심코 끄적이겠지  
 쥐, 똥, 쥐, 똥, 

 어느새 구겨버리고 말겠지만, 
 누군가는 카메라를 찾아 급히 셔터를 누르고 
 생각날 때마다 수시로 꺼내 들여다보기도 하겠지만 

 옛날의 그 쥐똥나무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게 되겠지 퍽 씁쓸한 일이야
 알고 보면 딱히 씁쓸한 일도 아니라는 걸
 
 한 그루 나무일 뿐이라는 걸 

 갓 태어난 누군가 엉엉 울고 
 그를 품에 안고 어쩔 줄 모르는 누군가 나무 아래 잠시 쉰다 
 쉬었다 간다

 골목이 끝날 때까지
 걷고 또 걷는다 다만 쥐똥나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름다웠다고, 
 그렇게는 말할 수 없는 
 더러웠다고 지옥만큼 끔찍했다고는 더더욱 할 수 없는   

 골목을 걷는다 
 바닥을 보며 걷는 내내 그냥, 그냥, 뭉개진 열매를 밟는다  
 지울 수 없는 물이 들겠지만

 밤에 혼자 걷는 누군가는 
 보지 못한다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알지 못한다    










 박소란시인

 2009년 《문학수첩》으로 등단.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한 사람의 닫힌 문』 『있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