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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호 Vol.17 - 정재분



 사이렌

  정재분





 아직은 말할 수 없다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 박자 침묵한 후 아다지오로 흐르는
 캐논을 사랑한 작은 목선은 
 어쩌다가 먼 바다를 바라보는 걸까
 스며드는 음악은 캐논이 아닌데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거친 바다로 나서려는 걸까
 죽는 연습을 한 적이 없는데
 오디세우스 뱃사람처럼 귀를 틀어막지 못했네
 버번 위스키의 두 마음과
 안주 같은 부끄러움을 무릅쓰려 하네
 목선은 떠내려가고 싶네
 노랫소리 들리는 화산섬으로
 죽는 연습을 한 적이 없는데
 들었다는 건 이미 불상사
 기어이 출항을 감행하거나 
 안간힘을 다해 가지 않아도 닥칠 
 통증의 깊이와 길이에 관하여
 아직은 말할 수 없다

 * 동요 「반달」의 가사 중에서









 정재분 시인

 2005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그대를 듣는다』 『노크 소리를 듣는 몇 초간』, 산문집 『침묵을 엿듣다』 『푸른 별의 조연들』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