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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호 Vol.16 - 이민하



 흙과 물

  이민하 






 누군가 나를 옮기다가 떨어뜨린 것 같다
 그러나 나를 줍지 않아서 

 깨진 방 안에서 눈을 떴다
 축축한 흙냄새를 끌고서
 나는 햇빛을 향해 기어갔다

 손톱을 기르듯
 날마다 물을 주듯
 손에 닿은 것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비에 긁히는 유리창
 미끄러져 떨고 있는 작은 새

 들어올래? 창문을 열어 주듯이
 젖은 날개를 흰 수건으로 닦아 주듯이

 잃어버린 깃털을 세고
 드문드문 끊어진 계절의 선을 꿰매고

 하늘을 오르면 산을 오르듯 새들도 숨이 찰까
 공중 계단 위에는 하얗게 눈이 쌓이고

 누군가 나를 옮기다가 묻어 버린 것 같다
 그러나 나를 지우지는 않아서

 눈을 감으면 얼굴부터 녹아내린다
 팔다리가 휘어진다
 조금씩 떠내려간다 내가 없는 숲속으로  

 손댈 수 없이 커져 버린 나무들을 지나
 주인도 없는 작은 무덤들을 지나

 나는 물속에 누워 있다
 누군가 나를 꺼내 기억 속에 담는다









 이민하 시인

 2000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환상수족』『음악처럼 스캔들처럼』『모조 숲』『세상의 모든 비밀』『미기후』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