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발자국
문정영
나는 스무 살부터 만지는 장난을 좋아했다
여름을 신나게 만지다 가을을 놓치곤 했다
날마다 가지고 놀던 강의 눈매, 작은 풀꽃의 웃음, 느티나무의 바람
마흔 넘어서는 만질 수 없는 순한 시간들이었다
그때 만지던 것이 나의 젊음이었는지, 불안이었는지
그때마다 자꾸 밖으로 끌려가던 욕망들을 보았다
어떤 눈물은 만지지 않아도 흘렀고, 색깔이 검었다
눈동자를 잃어버린 저녁이 식탁 앞에 서서 기침을 했다
그 후로 性이란 호기심의 발자국이 탄소 가득한 거리를 맨발로 걸어 다녔다
사랑은 에너지를 연소하는 일,
서로를 원할 때마다 불완전한 발자국이 몸에 남았다
지금 지구의 눈물은 12시 5분 전
이제 장난칠 여름이 보이지 않는다
문정영 시인
199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꽃들의 이별법』『두 번째 농담』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