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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호 Vol.15 - 이재훈



 피정避靜

 이재훈






 이따금 내 심장은 누더기였다.

 흙은 녹았고 풀은 불탔다.
 피난처가 없어 발바닥은 패였다.
 머리는 바람들어 환각으로 가득 찼다.
 손가락 끝으로 피가 고였다.

 사람들은 새벽까지 춤을 추며 술을 마셨다.
 골목에서 쭉정이를 고르는 전도자를 만났다.
 가방을 내려놓고 새벽비를 맞았다.

 구름은 잡을 수 없는 약속.
 약속에 실패하고 또 실패를 약속했다.
 꽃으로 살지 말고 나무로 살 것이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높은 이름을 불렀다.

 미명의 시간. 나무의 시간.
 아스팔트에 앉아 얼굴을 파묻었다.
 누더기를 걸친 사람이 다가와
 내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









 이재훈 시인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명왕성 되다벌레 신화생물학적인 눈물』, 저서 현대시와 허무의식딜레마의 시학부재의 수사학』,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