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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호 Vol.14 - 변혜지


 
절대 멸망하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

 변혜지






 곰의 탈을 쓴 사람이 내게 육박하였다. 놀라워하려고 했는데. 탈 쓴 사람의 곰이 벗겨지지 않아서. 곰의 간수이며 죄수로서 살게 되었네. 

 주인의 개가 주인을 사랑하듯이 
 곰은 나를 사랑하였다. 

 거대한 몸을 구부린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매일 곰과 같은 음식을 먹고,
 가끔 같은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나갈 수 없어. 

 복도에는 우리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머물렀다. 우리를 지키는 사람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하는데. 

 문밖의 사람이 문을 두드리며 말한다. 

 나야, 나라고. 움켜쥐면 쉽게 뭉그러뜨릴 수 있을 것 같은 목소리가 며칠이고 계속되었다. 주인의 개가 오랫동안 떠나 있던 주인과 만나 혼절하듯이

 곰은 문밖의 사람을 사랑하였다.
 거대한 몸을 구부린 채 문 앞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았다. 

 문을 열고 걸어 들어오는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또 너구나. 

 우리는 김이 피어오르는 뜨거운 두부를 함께 먹는다. 이번에는 절대로 실패하지 말자. 둥글게 둥글게 모여 앉아 다음을 기약하는

 이따위 꿈은 꾸지 않는 것만 못해. 그러나 
 사랑하지 않기를 선택할 수가 없었다.









 
 변혜지 시인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