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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호 Vol.14 - 이재연



분명한 저녁

 이재연






 흔하게 말합니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잠시 알던 여자는 잣나무 아래 잠들고
 비가 내리고 비가 그쳤습니다 
 
 아래층 아니면 위층에서 
 섬유유연제 냄새 훅 올라왔습니다
 
 실내화 끄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투정이 
 유리창 밖으로 툭툭 튀어나왔습니다 
 
 모두 저녁 식탁에 모여 있습니다 
 밥그릇 부딪치는 소리 가슴에 들어와 우두커니 앉아있습니다  
 때마침 두어 마리 새는 젖은 하늘에 수를 놓습니다 
 
 누군가 아이를 부릅니다 
 애타게 아이를 부릅니다 
 
 아이를 따라 건물 밖으로 
 사라져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흐린 대기 속에서 누가 부르는 것 같아 뒤를 돌아봤습니다
 이목구비가 늙은 나무였습니다 

 늦은 저녁 약속이 있었지만 약속을 버리고 
 나는 어쩐지 차가운 것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이재연 시인

 2012년 오장환신인문학상(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쓸쓸함이 아직도 신비로웠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