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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호 Vol.11 - 조재형

 


폐교를 앞두고

 

조재형

 

 

1.

마지막 겨울방학

아이들이 빠져나간 학교는 의식불명이다


음악실과 미술실 돌아 

양호실과 급식소 찍고 뛰놀던 아이들

교정의 들숨과 날숨 교실의 피돌기였다


현관 위 벽시계의 시간에 기대

연명하고 있는 학교

바늘 한 쌍으로 누워 

손을 흔들어 보인다

- 나, 아직 살아 있어


타종 시간에 맞추어

차도를 살피러 온 당직실 호랑이

벽시계가 움켜쥔 기대여명으로

- 조금만 더 버텨봐


이불을 걷어내고 소리를 질러대듯이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는다

손을 내밀어 애원하듯

높은 볼륨으로 

학교를 두드려 깨운다


여분의 시간을 벽시계한테 떠넘기고 

발뺌하듯이 교문을 등지면

공무직 고양이들 간병을 받으며 

정적을 앓는 학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학교는 목숨줄을 놓아버리겠지

벽시계가 조등으로 바뀌면

장학사는 사망을 선고하겠지

온동네 잡풀이 몰려오면 

학교의 주검을 에워싸겠지

마침내 자모회마저 외면하면 

지역사회에서 매장을 당하겠지


2.

새벽같이 기침하는 어머니

당신은 내 생애 최초의 학교

청춘의 시작과 끝에는

귀에 박힌 교양과목으로

당신이 개설한 잔소리가 자리했다


맨 처음 개교한 아버지는 오래전 문을 닫았다

졸업은 형제를 뿔뿔이 흩어지게 했다

일 년에 한두 번 

안부나 물어오는 재경 동문회처럼 

분교로 전락한 가계도


더는 가르칠 게 없다고

폐강을 서두르는 당신 앞에서

나는 여전히 삶의 낙제생

두고두고 빼먹고 싶은 경험칙이야말로

내가 이수할 필수과목인데


번번이 유급을 청하는 지천꾸러기 때문에

문을 닫지 못하고 견디는 

나의 모교


 

 


조재형 시인

2011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누군가 나를 두리번거린다』, 산문집 『집은 텅 비었고 주인은 말이 없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