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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복숭아
현이령
복숭아처럼 붉어지기로 한 날이었어요
복사뼈를 나란히 붙인 우리가 도착한 바다였어요
복사꽃은 우리보다 먼저 피어 뱃머리에서 흩날리고
선홍빛 두 볼 물든 우리가 뿌리를 내린 곳이었어요
복숭아처럼 붉어지기로 한 밤이었어요
나무의 지문을 훑던 우리가 바다에 나이테를 그리던 밤이었어요
차가운 어둠별이 체온을 나누던 밤이었어요
잠 못 이룬 4월의 바다를 보아요
눈시울 붉어진 바다에서 오지 않는 봄을 주워요
민낯을 하고 온 바다를 보아요
오래 눈인사를 하는 바다에서 만날 수 없는 봄을 주워요
꽃비가 내리는 진도의 바다
짓이겨진 꽃잎을 찢고, 찢고, 또 찢어요
끝내 잘라야만 이을 수 있는 끈 하나 붙잡고
얼어붙은 세월 속에서 도화가 피면 꿈속인 듯 만나요
우리는 복숭아처럼 붉어지기로 해요
끝내 버려야 담을 수 있는 기억 하나 붙잡고
내 몸을 나간 붉은 복숭아에서
젖은 눈알들이 구르고 있어요
현이령 시인
2021년 《전남매일》 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