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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호 Vol.10 - 현이령



  나의 복숭아

 

  현이령

 

 


  복숭아처럼 붉어지기로 한 날이었어요

  복사뼈를 나란히 붙인 우리가 도착한 바다였어요


  복사꽃은 우리보다 먼저 피어 뱃머리에서 흩날리고

  선홍빛 두 볼 물든 우리가 뿌리를 내린 곳이었어요


  복숭아처럼 붉어지기로 한 밤이었어요

  나무의 지문을 훑던 우리가 바다에 나이테를 그리던 밤이었어요

  차가운 어둠별이 체온을 나누던 밤이었어요


  잠 못 이룬 4월의 바다를 보아요

  눈시울 붉어진 바다에서 오지 않는 봄을 주워요

  민낯을 하고 온 바다를 보아요

  오래 눈인사를 하는 바다에서 만날 수 없는 봄을 주워요


  꽃비가 내리는 진도의 바다

  짓이겨진 꽃잎을 찢고, 찢고, 또 찢어요

  끝내 잘라야만 이을 수 있는 끈 하나 붙잡고


  얼어붙은 세월 속에서 도화가 피면 꿈속인 듯 만나요

  우리는 복숭아처럼 붉어지기로 해요

  끝내 버려야 담을 수 있는 기억 하나 붙잡고


  내 몸을 나간 붉은 복숭아에서

  젖은 눈알들이 구르고 있어요

 

 

 

 

  현이령 시인

  2021년 《전남매일》 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