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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와 모과
배수연
아침에 일어났더니 곁에 모과가 있었고
나는 침을 흘리고 있었어
거위는 모과를 좋아해
거위가 모과를 가져다 놓았어
향이 끝내주지?
이제 일하러 갈게
지난번 집에서 거위는
청소기를 밀다 사과 한 알을 깨뜨렸어
대리석으로 만든 광이 나는 사과
알콜로 문지르면 붉은 염료가 묻어났어
화분을 깬 적도 있어
나는 그 화분을 그릴 수도 있어
거위가 조각을 가져와 설명해줬으니까
잿빛 알 모양에 뿌리기 기법의 페인팅이 되어있는
들리지, 너도 들리지?
거위는 이따금 책가방을 맨 사람에게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를 들어
거위는 향수 코너를 좋아하지만
항상 모과만 가져오지
황금만큼 무겁고
태양처럼 빛이 나는
퉤퉤 침을 뱉다 엎드린 채 잠을 깰 때가 있어
옆에 모과가 있으면
무척 부끄러웠어
배수연 시인
2013년 《시인수첩》으로 등단.
시집 『조이와의 키스』 『가장 나다운 거짓말』 『쥐와 굴』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