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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손 미
내가 하나의 길을 따라가다가
내가 하나의 길만 따라가다가
문득
길이 내 냄새를 맡고
내 앞에서 망설일 때
너의 몸
열이 번져가는 길을 따라
내가 손을 올려
해가 뜨고 지는 방향을 따라
몹시 좋아해서 그랬어요
너의 몸
열이 번지는 곳을 따라
내가 손톱으로 긁어 내려갈 때
인간은 왜 이토록 긴가
촛불을 살해할 때
입을 틀어막는 손바닥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내가 따라가던 하나의 길이
입을 닫고 침묵할 때
지금까지 나는 너만 따라왔어
길이 내 냄새를 맡고 망설일 때
우리가 이렇게 길 줄 몰랐어요
내가 따라온 하나의 길이
점점 좁아지고
따라오지도 않고
따라가지도 않고
멀찍이 서서 침묵할 때
손 미 시인
2009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양파 공동체』,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산문집 『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상합니까』가 있음.
제32회 김수영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