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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호 Vol.37-이 수



 
 박제

 이 수





 그는 쏟아지는 태양과 몰아치는 태풍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닫힌 문을 흔들 때마다
 거친 곡물 같은 욕지기들이 끌려 나오고
 포물선을 그리며 침이 날아오를 때마다 
 입가에는 
 안개꽃이 마르고 있었다

 미간을 좁히며 
 눈을 가늘게 뜨며 
 지난날로 돌아가 있었다

 붉은 개미가 나무껍질을 타고 오르는 것처럼
 핏줄이 퍼덕이는 야윈 목
  
 나는 돌아서서 중얼거렸다 담론은 낡았다고

 날 선 테두리의 윤곽을 더듬었다고 한다
 외사랑의 기억이 더 오래가는 것처럼
 꼭짓점을 밟아보지 못한 발자국
 화석인 된 심장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돌고 있었다
 늪에 빠져버린 날개처럼
 세상의 조소에 귓바퀴가 소란스러울 것이다 

 나는 단언하였다
 숲속의 공중 끝까지 오르는 삼나무처럼
 우물 속 청회색의 숨은 물방울처럼
 깊고 높은 그늘을 담을 수 있다고

 꿈속에서 나는 
 오래전 거실의 장식장에서 보았던
 누렇게 변색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이수 시인
 2017년 시작》으로 등단 
 시집『오늘의 표정이 구름이라는 것은 거짓말이야』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