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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9월호 Vol.03 - 양소은



 

 

이름

 

양소은

 

 


입석표를 끊고

빈 의자에 앉으면 나는 도착이 아니다

흘러갈 길을 길게 잡아당기는 차창 밖을 내다본다

눈을 감아도

앞에서 어룽거리는 뒤가 끝이 날까요

 

말도 안 되는 말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호박 나물은 먹지 않지만 호박죽을 먹는

순대는 먹어도 순댓국은 밥상에 올리지 않는

일기장을 건네며 달아나던 순태, 나는 순대라고 불렀다

 

가을을 끌며 그림자 따라 새가 공중으로 원을 돌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바짝 따라올 때까지

기다리면

뒤는 있는가

 

질주하는 비, 굵은 비가 문을 밀고 들어온다

창밖은 먼 데서 날아오는, 각이 다른 이름으로

언젠가 등이 젖을지 몰라

끝없이 돌아왔다 떠나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서 있는 사람과 앉아 있는 사람이 의자 속으로 들어가고

각기 다른 행선지 속에서

전과 부침개와 지짐이라는 말 사이에서

서로의 입에 다른 귀들이

 

텅 비어있으면서 무거운, 젖은 종이처럼 깊숙이

젓가락을 들었다 놨다 썼다 지웠다 마지막 문장 한 줄 같은

몸을 바꾸기 좋은

이름은 나의 안쪽이다

 

꼬리가 긴 말로 검은 미소를 짓는

말대꾸하기에 좋은 이름 없는 고양이

고아가 된 어머니와

 

사실(나는 나를 떠나지 못했다)

 

묵은 오후의

눈을 크게 떠봐, 부분적으로 살아가는

나는 나의 타인이야

 

 

 

  

 

양소은 시인

2013시와소금으로 등단.

시집 노랑부리물떼새가 지구 밖으로 난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