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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9월호 Vol.03 - 박성현



 



폭설

  

박성현

    

 

 

당신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백 년 만이라 얼굴조차 가물었습니다

녹슨 현관 열어 두고서

옥상으로 난 초록 계단에 앉았습니다

 

달이 구름에 가려 반쯤 지워졌습니다

반쯤 지워진 달이 계단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갈매나무에 뒤엉킨 바람을 풀고서

꼭 멀리 가는 아버지 표정으로

나를 뒤척였습니다

 

혼자 비탈에 올랐습니다

가풀막이 심해 성긴 흙이라도 단단히 밟았습니다

녹슨 철근보다 무거운 젖은 재의 냄새들이 풍겼습니다

반쯤 지워진 달이 산마루에 걸쳐 있었습니다

너무도 희미해서 그림자가 모조리 빠져나갔습니다

 

계단에 앉아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밤은 차갑게 식어버려 서서히 물러갔습니다

폭설을 삼키며 비탈을 내려갔습니다

 

 

 

 

  

 

박성현 시인

2009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내가 먼저 빙하가 되겠습니다』『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