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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9월호 Vol.03 - 김산



 

 

슬픈 찬란

 

김 산

 


 

아침에 일어나면 삭발한 뒤통수를 천천히 어루만진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또 한 번

 

불룩하게 솟아오른 언덕, 그 위에 핀 마른 잔디들

 

까슬까슬한 생각들이 손바닥을 쓰다듬는다

 

손금 위로 흐르는 강물과 강물, 그 사이에

 

가까스로 가까스로 입을 뻐끔거리는 다슬기와 돌고기 몇

 

오래 전에 죽은 슬픔이 물돌 아래, 깊이 잠들어 있다

 

밤이거나 새벽이거나 눈을 감고 천정을 보면서 빌고 또 빈다

 

예수야, 슬픔이 가득 차올라 비로소 그 슬픔이 광명하게 해다오

 

부처야, 세상의 가난이 나로 말미암아 너의 눈부심에 소금이 돼다오

 

어김없이 아침의 빛은 나를 깨우고

 

베갯잇 아래, 수북하게 떨어져 있는 살비듬

 

나뭇잎의 각질이 떨어지고 있다, 아 가을

 

여우비가 오시는 거리를 천천히 걸어가는 긴 머리 소년

 

소주병에 담은 참기름 냄새가 발끝에 흥건하다

 

 

 

 

  

 

김 산 시인

2007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키키』『치명』이 있음.

2016년 제주 4.3문학상, 2017년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2017년 김춘수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