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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호 Vol.12 - 한혜경


 

 순이 삼촌과 강정심과 그리고…

 

 

 

  

  젊은 세대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1960년대에 유년을 보낸 나는 공산당이나 남파 간첩을 악마나 괴물이라고 여겼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 내 또래인 이승복의 죽음은 공산당의 이미지를 더욱 잔인한 것으로 각인시켰다.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고 어린 소년의 입을 찢어 죽였다는 이야기는 너무 섬뜩해서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자랐으니, 최인훈의 광장에서 주인공이 밀수선을 타고 북한으로 넘어가는 장면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그동안 몰랐던 세계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대학에 들어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 생활이 꿈꾸던 것과는 다르며 많은 것들이 은폐되어 왔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당시 우리 대학 1학년은 필수로 들어야 할 교양과목이 많아서 원하는 과목을 선택할 여지가 적었고 수업은 대체로 지루했다. 자연스럽게 수업은 빼먹고 시대의 고민을 나누는 척 학교 앞 다방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수업 교재 대신 읽게 된 책들은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것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었으며, 여전히 확인되지 않은 문제가 많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알게 된 이야기 중 하나가 현기영의순이 삼촌이다. 1949년 음력 섣달에 제주도 한 마을이 불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사건을 그린 소설.

  1988년까지 자유로운 해외여행은 생각하지 못할 때라 제주는 최고의 신혼여행지로 꼽히던 곳이었다. 그 전해 여름방학에 큰맘 먹고 갔던 함덕해수욕장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바다와 소박한 민박집 정경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차, 30년 전 이런 비극이 벌어졌다니 믿기지 않았고, 더 놀라운 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는 사실이었다.

  소설은 서울에 사는 중년의 8년 만에 고향 제주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할아버지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30년 전 그날, 할아버지뿐 아니라 오백 명 가까운 사람들이 한날 죽었으므로 이집 저집에서 연이어 곡소리가 터져 나온다.

  ‘는 그 곡소리가 지긋지긋해 고향을 외면해 온 지 오래이다. 그에게 고향이란 우울증과 찌든 가난밖에 남겨준 것이 없는 곳이고 30년 전 군 소개 작전에 따라 소각된 잿더미 모습 그대로 떠오르는 것이었으므로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던 것이다.

  제사를 마치고 그는 순이 삼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놀란다. 쉰여섯 나이에 순이 삼촌이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나오면서 소설은 30년 전 참상의 현장으로 독자를 끌고 들어간다.

  당시 일곱 살이었던 그의 시선으로 그날이 생생하게 묘사되는데, 사람들을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아놓은 후 군인 가족을 가려내고 남은 이들을 장대로 몰아가는 장면이 특히 처참했다. 운동회 때 바구니공을 매달아 놓던 장대로 오십 명 정도씩 떼어내어 끌고 가면 얼마 후 일제사격 총소리가 콩 볶듯이 일어나곤 했다. 통곡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애걸하던 사람들, 끌려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총구로 찌르고 개머리판을 사정없이 휘두르던 군인들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그 시절 순이 삼촌은 행방을 알 길 없는 남편 때문에 툭하면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곤 했으므로 그날도 총살당하는 무리 속에 있었다. 그런데 시체 무더기에 깔려 기적적으로 살아나온다. 하지만 아이 둘을 잃은 데다가 공포로 인해 정신적 상흔이 너무 깊게 남는다. 군인이나 순경을 먼빛으로만 봐도 질겁하고 신경쇠약과 총소리 환청 증세로 시달리며 살아왔으므로, 그때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사람이 어찌 이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명령이라면 어린아이까지 무차별적으로 죽일 수 있을까, 바닥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잔혹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삼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누구 하나 그 책임을 묻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학살이 상부의 작전명령이었는지 그 중대장의 독자적 행동이었는지 누구의 잘잘못인지 밝혀내야한다고 목청을 돋우는 길수형의 말에 거 무신 쓸데없는 소리고!” 하며 어른들 모두가 말린다. 섣불리 들고나왔다가 빨갱이로 몰릴 것이 두려워 고발할 용기는커녕 합동위령제 한번 떳떳이 지낼 뱃심조차 없었다는 서술이 이어진다. 왜 그토록 오랜 시간 이 사건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말해주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순이 삼촌을 안 지 44년이 지났다.

그때의 분노와 충격은 당면한 문제들에 밀려 잊혀졌다.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며 정신없이 살아오는 중에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 없다고 여겨지는 일들은 의식 저 아래에 가라앉혔다. 제주에 여러 번 갔어도 가족들, 친구들과의 일정을 소비하기 바빴다.

  4.3 특별법이 제정되었다는 소식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잠시 하고는 곧 잊었고, 4.3 평화공원이 개관했다는 사실을 뉴스로 알고는 있었으나 가 볼 생각을 못 하다가, 최근 문우들과의 여행에서 처음으로 방문했다. 당시 돌아가신 이들의 위패들을 모신 위패봉안실, 행방불명된 이들의 표석들이 무딘 내 가슴을 툭툭 쳐댔다.

  복잡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읽기를 미뤄두었던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펼쳤다. 그녀의 전작 소년이 온다를 읽고 너무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터였다.

  고통과 폭력, 인간의 잔인성에 대해 깊이 천착해온 작가답게, 50년이 넘어 봉인이 해제된 미군 기록물들을 포함해 수많은 자료를 참고하여 4.3과 그 이후 시간을 한층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당시 참상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살아남은 이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을 비롯하여, 행방이 묘연한 가족을 찾기 위한 눈물겨운 분투, 그리고 이들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그 뒤를 이어 그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섬세하면서도 단단하게 표명하고 있다.

  그 중심에 그때 열세 살이었던 강정심이란 인물이 서 있다. 언니와 함께 심부름을 가서 죽음을 피한 그는 이후 오빠를 찾는 데 온 힘을 다 쏟는다. 오빠는 주정공장 뒤 창고에 갇혀 있다가 대구형무소로 보내지는데, 6.25 전쟁이 터져 생사를 알 수 없게 된다. 휴전 후 찾아갔으나 4년 전 진주로 이감되었다는 기록만 있다.

  전화를 걸려 해도 제주 시내까지 나가야 하고 대구에서 진주까지 바로 가는 차편이 없어 부산을 거쳐야 하던 시절, 제주에서 대구로, 진주형무소로, 1950년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총살당했으리라 추정하고 경산으로, 오빠의 흔적을 찾아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그 시간은 열네 살부터 관절염이 심해 잘 걷지 못했던 70대에 이르기까지 반세기가 넘는다.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딸 인선에게 엄마는 마흔 넘어 자신을 낳은 할머니 같은 엄마이고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사람이었다. 쇠붙이를 깔고 자야 악몽을 안 꾼다는 미신을 믿어 요 아래 실톱을 깔고도 자주 악몽을 꾸던, ‘허깨비같고 살아서 이미 유령인 사람이었다. 엄마가 죽고 나서야 치매가 오기 전까지 대구와 진주, 경산을 오간 행적과 꼼꼼하게 정리한 자료를 발견하고 엄마를 잘 몰랐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엄마가 모은 자료들의 빈자리에 자신이 새로 찾은 자료를 메꿔 넣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제주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님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인선이 전하는 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듣는 이는 소설가 경하이다. 젊은 날 영상작업을 같이 하다가 인선과 친구가 된 경하는 K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쓰고 나서 악몽에 시달리며 사적인 삶이 부스러진 상태에 있다. 그가 반복해 꾸는 꿈은 눈이 내리는데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과 봉분들이 있는 벌판에 서 있는 꿈이다. 그런데 불현듯 바닷물이 밀려 들어온다. 물에 잠기기 전에 뼈들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어쩔 줄 모르는 중에 꿈에서 깬다.

  4년 전 인선에게 꿈 이야기를 털어놓고 함께 통나무들을 심어 먹을 입히고 눈이 내릴 때 영상으로 담아보자는 제안을 한 터이다. 이 프로젝트의 제목이 소설 제목이기도 한 작별하지 않는다이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는 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뜻한다고 말했다,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 끝까지 껴안겠다, 끌어안고 계속 걸어 나가겠다는 결의라고. 강정심이 죽을 때까지 오빠의 유해를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듯이, 강정심의 뒤를 이어 딸이 그리고 그의 친구가 죽은 이들을 기억하듯이, 육체는 사라졌어도 기억 속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도 생각해서 어떤 날엔 꼭 같이 있는 것 같았어.”라고 한 인선의 말처럼 간절히 생각하고 기억하면 같이 있을 수 있으므로 작별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이다.

  44년 전 느꼈던 충격은 일상의 무게에 눌려 희미해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애쓸 일이다. 오래전에 일어났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밀어두지 말고 무고하게 죽임 당한 이들, 고통받는 이들이 있었음을 기억할 일이다.

악몽에 시달리고 허깨비 같은 삶 속에서도,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오빠를 찾고자 했던 강정심의 지극한 사랑이 묵직하게 가슴을 누르던 순간을 잊지 말자고 되뇌어 본다.








한혜경 
수필가, 문학평론가,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

1998년계간수필수필 등단

2002한국문학평평론 등단.

평론집상상의 지도시선의 각도

글쓰기이론서생각 글 말내 안의 가능성을 보다

수필집아주 오랫동안이상한 곳에서 행복을 만나다』(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