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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열차 / 강인한 시집

 

 

 

 

 

 포지션 詞林 001

 도서명: 장미열차

 저자: 강인한

 판형: 120*185mm 양장본

 면수: 128쪽 

 값: 13,000원

 발행일: 2024년 3월 5일

 ISBN: 979-11-93169-02-5   03810

 

 

 

 [출판사 서평]

 

 시는 언어의 보석, 그 속에서 빛나는 시인의 영혼

 —올해 80 맞은 강인한 시인의 다양한 성향의 파노라마 『장미열차』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시의 종결부는 예민한 사회문제를 쉬르리얼리즘 기법으로 처리한 과감한 시였다. 카프카의 그로테스크한 방법론을 폭탄처럼 던지며 등단한 강인한 시인. 시인이 열두 번째 펴낸 시집은 그의 팔순을 맞아 내는 시집이다. 사회적인 현실을 다루되 탐미주의적 미학과 모더니즘을 지향하는(「불길 속의 마농」) 초기 내지 중기 강인한의 시편들에 대한 이가림의 지적은 음미할 만하다. “비근한 사물과 풍경의 배후에 감춰진 삶의 진정한 실체를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통찰력과 그의 빼어난 형상 능력에서 우리는 상상력의 깊이에서 우러나는 예술품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2006년에 상경한 시인을 만난 또래의 중견들은 그가 한국문인협회나 한국작가회의 소속 회원이 아니었으므로 얼굴을 대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신춘시’ 동인 시절 「율리의 초상」 이후 5.18 광주를 고스란히 몸으로 살아낸 중년의 시집 『전라도 시인』 『칼레의 시민들』로 미루어 가슴 한편으로 애틋한 서정을 품었으되 이름처럼 강인한(「검은 달이 쇠사슬에 꿰어 올린 강물 속에」) 사람 아닐까 가늠하기 어려웠을 터였다.

 시집 『장미열차』는 비록 작은 시집일지라도 60년대 후반부터 30년의 군사정부 시절과 민주화 이후의 역동적인 사회 변화를 두루 거친 시인의 면모를 아기자기하게 맛볼 수 있다. 등단 초기의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를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한 번 들여다볼(「새벽의 질문」, 「풍등風燈」) 수도 있으며 영상 감각과 애상적 음악의 해조(「삼각해변을 달리는 개」,「눈물」)를 느낄  수도 있다.

 시력 40년을 넘어서면서부터 시인이 내놓은 시에 대한 정언은 단호하다. “시는 언어의 보석이다. 그 속에서 빛나는 것은 시인의 영혼이다.” 그리고 시에 임하는 자세를 “나의 종교는 시다.”라고 결곡하게 밝힌다. 

 고교 시절 신석정 시인에게서 배운 시인은 김수영 시인이 손잡아 등단한 이후 순수 서정과 모더니즘의 동반을 의식하며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코로나19가 풍미(「밤새 안녕하신가요」)하는 가운데 금혼식이라는 개인 신변의 서사(「어느 새벽」) 못지않게 시인의 관심은 제3세계 내지(「상아가 사라지는 모잠비크」) 인류세의 종말에까지 확대(「불타는 노틀담」)되고 있다. 보석처럼 아름다운 언어를 꿈꾸며 영원한 사랑을 노래(「장미열차」)하는 시인은 또한 모순된 이 땅의 현실을 직시(「배낭을 짊어지고 아고라로 가는 사람들」)하는 뜨거운 가슴을 지녔다.

 

 

 

  [시인의 말]

 

 『두 개의 인상』 이후 4년 만에 낸다. 열두 번째 시집이다. 세계와 의식이 부딪쳐서 포에지가 발생한다. 내게는 시가 그렇게 온다. 

 정해진 그릇에 담을 용도에 따른 작품을 제작 생산하는 능력이 내겐 없다. 어떤 기후가 발생하였는가, 거기에 어떤 세계가 나타났는가에 따라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주어진 현실과 기후에 따라 내 시적 반응은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나는 그렇게 시를 써왔다.

 -2024년 봄, 강인한 

    

 

 

  [시집 속의 시]

 

  세탁기 속에는 생쥐가 산다



  쥐구멍이 있어

  세탁기 속에 안 보이는 쥐구멍이 있어

  양말 한 짝을 생쥐가 물어가 버리고,

  감춰둔 양말 한 짝을

  또 살그머니 갖다놓기도 하였다. 


  자정 가까운 때

  이불 속을 파고드는 비몽과 사몽의 틈을 비집고

  드러누운 잔등이

  내 손이 닿지 않는 달의 뒤편처럼 캄캄하다. 


  남의 손을 빌려야

  닿을 수 있는 미지의 단말 구역

  시원한 손의 방문을 기대한다.

  정곡을 짚어서 시원하게 뚫어주기를 기대하건만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를 건조대에 널기 위하여

  내복을 털다가

  생뚱맞게 소매 속에서 양말 한 짝

  미안한 듯 밤톨처럼 굴러 나온다.


  아하, 거기였네. 

  생쥐가 물어간 쥐구멍이 바로 그것이었는가. 


  꼭 당신의 손이 필요한 시간

  아니, 필요한 당신을 사나운 가려움증이 깨우쳐준다.

  당신의 손이 허둥지둥

  이리저리 뒤집고 살펴도 거기, 거기가 아니다. 


  마침내 내 손수 속옷을 벗어들고

  활활 털어도 떨어지지 않던 건

  바로 요것, 

  등판에 붙어서 끝끝내 시치미 떼던

  한 가닥 머리카락이었다.

  이 작은 발견의 기쁨은 보름달처럼 환하다.




 

  물 먹는 사람



  윤슬.

  윤슬이 튄다. 반짝반짝. 


  오후 세 시, 11월

  윤슬을 데리고 물오리 혼자 논다.

  한강에서 


  모터보트가 끌고 가는 한 사람.

  보트 뒤 물살 비틀어

  건너다니는 지그재그

  즐거운 스키어. 


  유턴의 지점

  보트가 멈추고 고요의 바닥으로

  가라앉는 사람.

  일분, 이분… 


  삼 분 만에 다시 검정콩 같은

  강물 위의

  점. 


  점이 끌고 나온 몸통,

  꼿꼿한 몸통 일으킨 채로 상쾌하게

  물살을 가른다. 


  멀리 은빛 반짝인다.

  수정 구슬.




  배낭을 짊어지고 아고라로 가는 사람들



  아고라의 아침은 비둘기들의 조찬으로 시작된다.

  가로등 아래 진설된

  말라붙은 컵라면과 한밤의 토사물과

  지난밤 다른 도시에서의 테러와 소요

  종교부족 간의 전쟁 기사를 싣고 뒤척거리는 신문지들. 


  우리들의 내부에서

  녹슨 태양이 술렁이는 아침

  우리들의 과거는 검푸른 이오니아의 바다

  학교에서 바라본 금환일식, 금테 두른 태양

  혹은 노래도 꽃도 없는, 진실이 없는

  신문지. 


  모두들 헤어져 간 소년들의 운동장에서,

  은밀한 숲속 산책로에서

  발길에 차이는 마스크, 마스크, 마스크……

  가위눌린 꿈속,

  떠나간 친구들의 엉뚱한 변모

  집배원의 피곤한 손에서 반려되는 우리들의 안부. 


  경광등 번쩍이며 사이렌이 울리고,

  우리들의 영웅은 없고 슈퍼맨도 오지 않는

  시시티브이를 피해서

  유아를 학살하는 어린이집 지붕에 비둘기와 낮달

  울고 있는 아이들, 아이들의 삭은 이에

  순금의 비가 내린다.

  하늘에서의 분분한 낙하, 그것들이 맑은 음색으로

  대낮의 시가지를 뛰어다닌다.


  주말이나 휴일 우리들은 영화관에 갔다가 외식을 하고

  바람이 이는 엷은 미열을 느낀다.

  (선별진료소로 찾아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파이프 오르간 기분 좋은 모음과 함께

  우리들이 마련하는 한 줄씩의 귀가


  일몰이 드리워진 공원 벤치에서

  지그시 머리를 드는 식욕

  고궁의 뒷길을 가는 잿빛 부연 눈물

  눈물 속에 잠기는 참 작은 세상, 잿빛의 카페

  잿빛의 포장마차에서 문득

  죽은 친구들의 하얀 손이 나온다.

  그들의 하얀 손이 나와서 어두운 우리들의 이마를

  뭉쳐져 있는 기억을 더듬는다. 


  나무가 자란다.

  가시 돋친 나무가 철근처럼 지붕을 뚫고 자란다.

  그 나무 등걸 안에 은밀한 음성과 식탁,

  아침 식탁을 앞에 두면 우리들은 마리오네트

  즐거운 마리오네트

  우리들의 내부에 순순히 귀항하는 늙은 태양. 


  두 개의 국기를 배낭에 창검처럼 꽂고

  국경일 아침마다 아고라로 나서는 사람들

  검찰의 선택적 수사와 선택적 기소와 선택적 정의를

  사랑하는 영원한 보수주의자들, 할렐루야

  눈부신 은총 속 이 도시엔 소문이 많다. 


  이면도로 질척이는 헛소문에

  돼지들이 빠진다.

  돼지들 꿀꿀거리는 온종일

  하늘엔 안개처럼 축복처럼, 방사능 미세먼지 뿌옇다.


 

 

 

  

   

 

  강인한 시인

  1944년 전북 정읍 출생본명은 동길전주고등학교전북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시집 이상기후』『불꽃』『전라도 시인』『우리나라 날씨』『칼레의 시민들』『황홀한 물살』『푸른 심연』『입술』『강변북로』『튤립이 보내온 것들』『두 개의 인상『장미열차시선집 어린 신에게』『신들의 놀이터』『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시 비평집 시를 찾는 그대에게』『백록시화. 37년간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2004 2월 광주살레시오고등학교에서 명예퇴직. 2002 3월부터 다음(Daum)카페 푸른 시의 방을 열고 2023 5월 현재 좋은 시 읽기 12,800여 편을 실어 우리 현대시의 참되고 바른 길을 제시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음전남문학상한국시인협회상시와시학시인상전봉건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