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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사랑하는 법 / 신원철 시집

 

 

     

세상을 사랑하는 법 

  신원철 시집 

   20227월 29일 발간/서정시학

 

 

[서평]

 신원철 신작시집 『세상을 사랑하는 법』(서정시학, 2022)은, 시인 스스로 밝혔듯이, “물과 흙을 테마로”(「시인의 말」) 하여 역사의 구체성과 삶의 원초성을 구성해낸 이채로운 미학적 결실이다. 굽이치는 수많은 장소와 공간을 시집에 등장시킴으로써 시인은 물리적 구체성과 함께 경험적 실감을 북돋우어주는 상상적 축도(縮圖)를 충실하게 마련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 미주, 유럽 각지를 섭렵하고 관찰하면서 그는 그 경험을 통해 ‘기억의 지도’를 완성해간다. 그러한 열정이 이번 시집으로 하여금 한편으로 ‘역사’를 한편으로 ‘삶’을 선명하게 구축하게끔 해준 것이다.

 두루 알다시피 인류는 과거 기억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기록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해왔다. 고대로부터 역사 기술은 공동체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한 것으로서 망각에 대항하는 싸움이라 여겨졌고, 인류의 문학과 예술은 그러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것으로 보존되고 전승되어왔다. 신원철 시인은 서정시의 가장 깊은 안쪽으로 그러한 서사 충동을 편입해옴으로써 기억 보존의 강력한 방법으로서의 서정시를 써간다. 또한 그는 일상 쪽으로도 따뜻한 시선을 건네면서 우리 삶을 이루는 근원적 원리에 깊이 주목하기도 한다. 그의 시에서 역사와 일상은 그렇게 종축과 횡축을 이루면서 삶의 다양성과 깊이를 보여주는 창(窓)으로 기능하고 있다.


 

[추천사]

 훌륭한 서정시는 개성적인 상상력을 통해 일상에 편재해 있는 불모성을 치유하고 신생 가능성을 꿈꾸게끔 한다는 점에서, 신원철의 시는 오랜 시간을 재현하면서 그 안에서 활달한 기억의 운동을 보여줌으로써 서정시가 생성의 활력과 가능성을 증언하는 양식임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할 것이다. 이번 시집은 시인의 가열한 사유가 그려내는 이러한 파문을 아득하게 보여주면서, 지극하게 빛을 뿌리는 순간을 재현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역사의 엄정함을 한편으로는 실존의 고독을 끌어안고 있다 할 것이다. 시인의 심층적 사유와 고독이 미학적 기품과 함께 젖어오는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시인의 말]

 물과 흙을 테마로 시를 엮었다

 근 3년의 노역이었다

 이 작은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읽힌다면 

 나로서는 고맙고 기쁘겠다

 

 흙빛 바닥이 열릴 때

 그 안에 들어가서 먹는다운다

 가장 크게 숨 쉰다

 

 

 

 [시집 속의 시]


 한강 1



 여의도 하늘에 뭉실뭉실한 구름

 틈새로 쏘아 내리는 햇살


 각이 뚜렷해지는 유리와 콘크리트의 실루엣

 빼곡히 솟은 경제의 숲


 그 아래 누렇게

 끝없이 일렁이는 물그림자


 - 한 번도 속 시원히 내려가지 못했지

 - 하지만 언제 잠시라도 쉬었다더냐?




 개벽 2018



 지붕을 열어놓은 스타디움에서

 암흑의 벌판으로 퍼져나가며

 겨울 하늘을 쩡쩡 찔러대는 빛의 창들


 고난과 역경을 딛고 올라선 희망과 에너지가

 아이들의 통통 튀는

 춤과 노래로

 빛의 강을 뗏목으로 건너는

 다른 아이들도 통통


 반도 동쪽의 한구석에서

 만주를 넘어 시베리아, 우랄까지 뻗어가던

 요란한 함성에

 차가운 대기가 후끈거리고


 이 심심 산골짝에서

 눈과 얼음의 잔치가 열리고

 세계의 젊은이들이 모여들게 될 줄이야


 버려져서 숲과 물이 맑은 땅

 너무 맑아 물고기와 짐승만 살던 땅


 춤추는 김연아의 나선형 성화가

 검은 하늘을 뚫자

 쏟아지는 별들이 빛의 오륜을 만들고


 이북의 형제들까지

 노래하고 춤추며 찾아올 줄이야




 세상을 사랑하는 법



 길을 걷다가 화단이나 좋은 나무를 보면

 오줌이 마려워진다

 그것들의 뿌리에 에너지를 보태고 싶어

 하늘과 땅의 정기가 내 몸을 한 바퀴 돌고 난 뒤

 오줌길을 통해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장엄한 순간을

 초목과 나누며

 그것들의 떨림을 듣는다


 우리 집안을 일으키신 농자, 고조부께서는

 절대 대소변을 밖에서 허비하지 않으셨다

 참고 참으며 어기적 걸음으로

 집에 돌아오신 다음

 마지막 한 방울까지 두엄으로 보태셨다


 이 아까운 걸 변기에 버리고 물까지 내린다고?

 왕숙천 변을 친구들과 걷다가

 갑자기 그 어른 생각에 돌아서서 대지를 흠뻑 사랑했더니

 고조부 웃음소리 쟁쟁하게 들려온다




 심우도



 비가 내리면 더욱 포근한 산자락

 가까이 훌쩍 다가와 너울너울 품을 여는데

 담장 아래 돌절구 속에서 피어오르는 수련


 푸른 정기가 쏟아지는 거기서

 다른 것 접고

 밤새워 고스톱을 쳐보라

 부처의 말씀은 그림 속에 있으니

 인생길의 어디쯤에서

 고나

 스톱을 불러야 할지


 자비심이 포근히 내려앉은 계룡산 절집 근처에서

 눈알이 뻑뻑해지고 무릎과 골반이 시큰거리며

 그저 드러눕고 싶어질 때쯤

 아침이 붐한 창가에 등을 기대어보면

 한 마디 나직한

 할!


 본전 생각 마라

 그 손 한번 툭 털고


 

 

  

 신원철 시인

 

 경북 상주 출생.

 2003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동양하숙』 『닥터존슨』 『노천탁자의 기억』이 있음.

 강원대학교 글로벌인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