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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너 하나만 보고 싶었다 / 나태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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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집/너 하나만 보고 싶었다(와 에세이/ 2021.03)

 

 

 

 

외로움

 

  

맑은 날은 먼 곳이 잘 보이고

흐린 날은 기적소리가 잘 들렸다

 

하지만 나는 어떤 날에도

너 하나만 보고 싶었다

 

    

 

보고 싶어도


  

보고 싶어도 참는다

오늘 내일, 그리고 내일

 

그렇게 참아서 한 달이 되고

봄이 되고 여름 되고

가을도 된다

 

어제는 네가 오늘이고

내일이고 또 봄이고

여름이고 가을

 

아니다 하늘의 별이 너이고

나무들이 온통 너이고

길가에 피는

풀꽃 하나조차 너이다.

 

    


바람 부는 날

  


두 나무가 서로 떨어져 있다 해서

사랑하지 낳는 건 아니다

두 나무가 마주 보고 있지 않다고 해서

서로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다

 

바람 부는 날 홀로

숲속에 가서 보아라

이 나무가 흔들릴 때

저 나무도 마주 흔들린다

 

그것은 이 나무가 저 나무를

끊임없이 사랑한다는 표시이고

저 나무 또한 이 나무를

쉬지 않고 생각한다는 증거

 

오늘 너 비록 멀리 있고

나도 멀리 말이 없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고

서로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다.

 

     


일생

  

 

고등학교 입학시험 치르던 날

보호자로 따라오신 아버지

여름 양복을 입고 있었다

 

친구 여학생 아버지는

제일모직 겨울 양복을 입었는데

아버지는 그것도 삼촌의 양복을

빌려 입고 있었다

 

나는 부끄러웠고

아버지는 추웠다

끝내 그 두 마음이

두 사람의 일생이 되었다

 

춥지 않기 위해서

살았던 아버지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살았던 나,

 

 

 

 

 

무지개가 뜨면 아, 하고 입이 벌어진다. 그러면서 한 발이 앞으로 저절로 내디뎌진다. 무지개가 끄는 힘이다.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내달린다. 무지개를 좇아가고 싶어지는 마음이다. 할 수만 있다면 무지개를 잡아보고 싶다. 발길은 마을 길을 벗어나 들판 길로 접어든다. 그러나 그때 무지개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내달리는 아이의 발길에 힘이 빠진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 무지개가 떠오른 날, 무지개를 잡겠다고 들길을 내달리고 높은 산을 넘어 멀리 떠난 한 소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소년은 아직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어딘가 낯선 땅을 헤매고 있다고 한다. 그 같은 소년을 사람들은 오늘날 시인이라고 부른다.

실은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어느덧 나이가 일흔을 넘기고 여러 가지로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무지개를 좇아다니는 한 아이일 뿐이다. 참 어이없는 일이고 불편한 노릇이다. 날마다 좇아다니는 무지개가 나에게는 시이다. 보였다 하면 사라지고 잡았다 하면 놓쳐버리는 바로 그 시                            

                                                                                                                                                                            - 시인의 산문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