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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호 Vol.35 - 고형렬


고형렬 시인

신작시 2근작시 3편시인의 말


 ㅣ신작시 2편ㅣ

  

 그곳 복사뼈 개울에는 

 

 

 죽어서 살게 되리 산이 되어 항상 바라보고 서 있으리


 안 보이게, 작은 신들이 살고 있는 산모래가 키워온 오리나무는 플라타너스 기린처럼 서서 물을 마신다 

 다복솔을 능선에 두고 느티나무를 내다보며 모든 가지가 별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찬바람 속에 진달래가 꽃 필 때, 웃으며 같이 살다 다시 헤어져도 

 사랑했으므로 낙화는 아파하지 않는다 사월 산바람에 황토색 뿌리까지 흔들며 

 희고, 붉고, 노랗고 또 파랗고, 검은 싹의 폭포가 삶을 찾아

 죽음 이쪽으로 건너온다

 

 나무껍질이 하나하나 잎이 된 손바닥을 내 눈에 펴 보이는 눈맞춤, 눈 뜬 신들이 작게 작게 살고 있는 복사뼈만 잠기는 물속 그곳, 


 나뭇가지 바람이 스치고 그 성긴 곳에 밤을 입힌 하늘이 열리고 달구름이 가고 

 해가 떠올랐다

 기린도 서 있고 산양도 서 있고 돌가재도 서 있고 올챙이도 서 있고 죽은 반달가슴곰도 서 있고 

 하늘의 토끼도 서 있다 다시 시작하려고


 오리나무, 


 우리는 피치 못하게 깊지 않은 바닥에서 살았던가 곤충보다 작아져서 아니 곤충의 날개가 되어 선해지려는 나그네 눈에 

 우리의 신들은 보이지 않는다 죽어서 살기 때문이다

 잠시 같이 살았던 님의 먼 기억만 사진 속에 걸려 있을 뿐, 동쪽 어둡고 높은 절벽 너머 물결치던 산모래로

 사각사각 무너져 내리던 것들

 밤처럼 깊어가던 것들


 물방울 반짝이는 나의 복사뼈 개울엔…… 저것 봐, 아직도 할 말이 있어, 비로소 희게 희게 돌아온 아침 달 하나가 꿈이 될 줄은


 대진으로 가던 그해 스무 살의 오리나무 눈보라, 눈물 자국 하나 남기지 않았다 


 찰칵찰칵, 숨 가쁘게 셔터를 눌러대는 물소리만 

 내 구두 한 켤레 받아주던 그 먼 길가에 아직도 하얗다 


 다시 오려면 이쯤이 좋은 때, 나 오직 사랑한 사람에게 이 시를 바친다 할지라도 

 그분은 이 나라에 계시지 않아, 바람만 불고 꽃만 피었다 갈 뿐이다

 


 

 

 유전자중심주의사회

 

 

  다음과 같이 “껍데기는 가라”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껍데기는 가지 말라” 혹은 “껍데기는 가라고 말하지 말라”


 아니면 삭제해야 한다


 그들이 그곳에 있음은 대지와 곡식의 빛, 저 껍데기 덕이다


 수정해야 한다 


 자라기 위해선 분열해야 하고 껍데기 없이는 분열할 수 없다


 용하고 작은 자궁이여, 


 분열 때부터 껍데기와 알맹이는 혼연일체였다 


 은유라도 “껍데기는 가라”는 말은 나에게 괴로움이 되었다


 처음부터 다시 써야 했다 


 나는 껍데기 쪽인가 너는 알맹이 쪽인가


 나의 껍데기, 


 모진 세월이 너무 눈부신 저 태양으로부터 나의 눈을 가려다오


 분리주의로부터 영혼을 지키도록


 너의 홍채 속에 잠깐의 물과 그늘이 지나가게 해다오


 

 

 

 


 ㅣ근작시 3편ㅣ

  

 마왕魔王의 비 



 나의 생을 재촉하는 가을 빗소리 속에

 나의 구두는 우산 밖으로 조금씩 앞서 나가면서

 작은 빗방울들을 맞는다


 그 구두 위에 앉아서 비를 맞는 마왕을 본다

 차례를 지키며 빗줄기에 떨면서

 나의 생이

 가장 진지하게 가고 있던 종로 삼가쯤 어둠이다


 삼가는 밝기를 싫어하고 늘 어두웠고 좋았다

 우산 밑에 울고 가는 가을비 재촉 소리

 풀줄기 하나 없어도

 나는 우리의 삼가를 좋아하고 삼가도 삼가를 좋아한다


 우리의 생과 사랑 몇이 그곳에서 방황하던 날들

 빗방울 맞던 우산 속의 빗소리 기록


 마왕은 빗속에서

 삼가 질컥이는 길바닥의 불빛에 자신을 비추며

 남산타워 녹색의 신호등을 보내고 있다



 


 나의 공룡능선 



 그곳에 가면 바다가 있다 깊이를 모를 검푸른 바다


 산의 어스름을 껴안은 파랑이 창밖의 어둠을 때리고 간다

 길 건너편에서 수화로 이별한 눈구름의 스카프처럼

 바다는,

 수많은 기를 손에 든 채 바람이 되었다


 그곳에 젊은 날의 그대 없는 시가 있고 아무도 구하지 못한 

 꿈이 뒹군다

 지금도 허공을 뿌리치는 달은

 세월을 베어 물고 가고 그래서 검은 생명의 기억 같은

 먼먼 동해는 더 늙지를 않는다


 모두 바치고 가는 자정 늦은 밤 산길을 돌아서 돌아서 

 동해로 가면, 

 동해는 해가 떠난 서항西港이 되는 듯

 그대의 신령과 준엄은 모든 수사를 뛰어넘은 밤이 되어

 캄캄한 가슴의 나는 점점 도드라져 밝아왔다


 나여, 지금은 석얼음 같은 그믐, 

 작은 그녀는 단단히 묶은 맨발로 월인月印의 바다를 밟고

 언덕 계단을 빛처럼 뛰어 내려온다

 언제나 등대가 그곳에서 불을 켰기 때문이다


 폐허가 부끄럽지 않은 것처럼

 모방도 패러디도 필사도 마다않던 시절이 그에게 있었다

 자신을 향한 끝없는 사랑과 관찰의 나날을 지나

 서투른 언어가 안개 세상의 모든 의미를 두고 돌아가고 있다


 도무지 후회가 치받치는 무인도 앞에 다다르면

 길이 없이도 푸른 거울의 바다는 

 한 필씩 펼쳐져 내 눈 속의 발치에서 은비늘로 반짝인다


 어둠이 내린 수평선은 그리움이 끝난 낯선 바다가 되어

 새벽 햇무리를 맞는다 할지라도

 그는 눈을 열지 않을 것이다

 미명 속엔 아직도 다 젊지 못한 그녀가 혼자 살고 있다

 이제 바다는 

 그의 눈을 감추고 다시 그녀를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멀리 흐려지는 그대 목소리만 우리 모두를 혼자씩 남게 하고

 검은 달빛의 그림자는 심연을 달려가며

 그대 눈가에 아득히 내려설 뿐,


 눈 내리는 공룡능선을 걷는가 혼자 다 살아도 다 살진 못해서

 눈 그친 공룡능선을 밟는가


 여기서 너는 어둠을 지키고 나가지 말아라

 칠흑 장막의 눈이 찢어져 너는 올 테니

 생이 없는 죽음에겐 저 찰랑이는 자금색 빛도 다시 없다 

 



 

 청미래덩굴 속으로



 다시 잎 도타운 청미래덩굴 숲으로 가고 있다


 미리 그 밑에 들어가 앉아 집 없는 아이가 되려고

 동냥 받는 꿈 하나를 못 이루고

 천길 벼랑 아래 돌서렁을 밟고 내려서리


 그 영혼은, 동해 용궁이 보이는 그쯤 언덕에서

 얼음이 녹는 손 시린 

 아침 길이 될지라도


 기약 없는 초록의 성장盛粧을 맞으며

 뿌리 뻗고 서 있는 곳까지만 양식으로 삼을 터

 지금 너의 마음속으로 걸식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둠을 받아 내 두 눈을 거기 놓고 나오면

 눈 시린 동북 파랑과 북새 구름에 사나흘 몸살을 앓고

 눈 이레씩 와보라,

 그 사람들 손과 얼굴 끝내 보고 싶다고

 청미래덩굴 하나 허공에 올려 줄 수 있을까


 바람 퉁갈이나 따먹게 해주고, 나를 잊게 해줄까보다

 그래 아니다, 아니다

 어쩔 줄 모르게 산 노을 걸린 불이문만 쳐다보게 해줄 테다


 아침 해로 새 옷 입힌 채

 나는 혼자 밤의 끝에 오는 청미래덩굴 아래 한 줌의 

 흙이었을까


 어디도 가지 않는 길은 없어서

 동냥 온 남의 아이를 빗줄기 속에 앞세우고

 이제 내 저녁으로 돌아왔으니 아가야, 여기서 우리 둘이 

 나누어 쉬자


 서로 다투는 것들 어디서 멈출지 앞서가라 하고

 두 손의 온기로라도 네 두 뺨을 잎으로 감싸며

 평생 봤어도 인사 한번 못한 슬픔의 이름으로 내 몸은 너의 

 옷이 되리


 자신도 모르게

 그 단단한 청미래덩굴 잎으로 피어나면

 동해 수평선 아기 햇살로 다가오듯, 둘이 마주 껴안은 채

 줄기 내려간 뿌리에서 흙과 물을 받으리


 그때, 우리 서로 몸 바꾸고 돌아와 살아도 좋으리



 




 ㅣ시인의 말ㅣ

  

 분열하고 갈망하고 폭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세상은 이미 기울었고 미천하며 그 자체 상실에 대한 어떤 비판도 시에겐 무용해서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운명다운 길을 가고 있다. 

 희미한 원생생물의 기억은 차치하고 근대의 일차적 삶의 원형도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유년을 기억할 수 있는 장소도 아버지도 잃어버리고 그 유전자도 망실했다. 

 차라리 여기서 행복해졌으면 싶지만 고독과 불안만 고층빌딩처럼 높아간다. 아무도 저 고층빌딩에 대한 공포를 이야기하지 않으며 허물 수 있는 기술에 대해 논의하지 않고 긴 그림자를 밟고 서 있다. 

 청맹과니가 되어 자연의 기억 저쪽 문명을 바라보면 이제 나는 어딘가에 도착하고 있는 불멸의 운명을 느끼곤 한다. 확정되지 않은 미래로 나아갈 뿐이라고 명분 좋게 말해도 사실 모든 것은 이미 확정되어 있다. 우리는 그들 앞에 가서 서 있고 그것들은 우리 앞에 와서 서 있다.

 가끔 나는 자신에 대해 두려움 없이 확정된 자기 모습을 앞당겨 보는 즐거움을 발견하고 그 속에 빠질 때가 더러 있다. 이것은 나의 시적 권한이다. 나는 오래 전에 내가 받을 독상獨床을 알고 있다. 

 이 시는 부재의 숲속에 숨어 있다가 문득 운 좋게, 아니 어쩌면 불행하게 출현해서 도망가지 못한 망각에 걸린 비문증들이다. 없을 수 있거나 숨을 수 있었는데 이 시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크고 작은 유전자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꿈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송장의 벋장다리와 굳은 목과 등짝을 힘주어 한 번 쭉 뻗으며 ‘없음의 있음’ 속에 가는 것이 무상의 기쁨이다.

 죽은 자의 고막 속에 찰칵찰칵, 숨막히는 소리가 들린다. 지옥에서 들려오는 제철소의 굉음 같다. 말하기 어려운 것들이 찾아와 나를 혼돈에 빠트릴 때 겨우 일어서서 시를 쓰지만 정작 다시 일어나지 않게 되길 바란다. 


 

 

 

 

 

  

 고형렬(高炯烈, Ko Hyeong-ryeol) 시인

 속초에서 출생했다. 

 1979년『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대청봉大靑峯 수박밭』, 장시『붕鵬 새』,  시선집『바람이 와서 몸이 되다』등을 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