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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호 Vol.34 - 정용국


정용국 시인

신작시조 2근작시조 3편시인의 말


 ㅣ신작시조 2편ㅣ

  

 동두천 춘분

 

 

 이른 봄 시샘추위 얇은 옷깃 스미는데


 산막에 깃들이고 새 집 짓는 딱새 한 놈


 집 주인 아랑곳없이 대공사가 바쁘다


 방해될까 눈치 보여 라디오도 꺼놓고


 쉴 새 없는 공사판을 응원하고 있는데


 철없는 미군 헬기는 깐죽대며 지나갔다

 



 굿네이버스

 

 

 깡마른 정강이가 화면 가득 차오른다


 흐벅진 먹방 프로 눈물 광고 지나가네


 월 만 원 굿네이버스 다 어디로 갔는지


 

 

 

 


 ㅣ근작시조 3편ㅣ

  

 소파를 보내며



 취한 몸도 받아주고 게으름도 참아주며

 살벌한 전시에는 안방이 되어주던

 말귀도 훤할 듯하다 솔기 터진 저 화상


 살갑던 웃음소리 날이 섰던 말다툼에

 풀 없이 주저앉던 실망의 무게까지

 모른 척 버티던 다리도 힘에 겨워 울었다


 얼룩진 팔걸이에 모처럼 코를 묻고

 마지막 네 품에다 몸을 맡겨 보는 밤

 옹색한 변명이 길다 너그럽던 꿈자리



 


 돌을 던지다



 잔소리 기 싸움도 모두 다 두고 가자

 명분에 목을 매고 외통수를 노렸던

 한 가닥 최후통첩도 머쓱해진 후반전


 불계승을 노리다가 반집에 무너지고

 정석만 내세웠던 당신의 계산법도

 이제야 다시 읽는다 눈먼 돌을 집는다


 눈물 밴 쓴웃음도 이젠 다 버리고 가자

 어설픈 축을 몰아 승패를 따지기엔

 첫 돌을 놓았던 손이 민망하지 않은가

 



 

 청춘 포장마차



 빛바랜 파견직에 애꿎은 치킨게임


 쓰리고 고달픈 건 모두 다 끌고 와라


 궁하고 술 고픈 날엔 등이라도 기대보게


 청춘은 꿈이라며 유행가는 날아가고


 희망은 절뚝여도 술은 달고 숨 차는데


 포장을 다시 치고 걷듯 우린 아직 젊구나


 폭음의 먼 기억도 숙취에 쩐 새벽도


 살다 보면 가난처럼 정이 들지 않겠느냐


 마차는 기다리지 않아도 어묵탕은 뜨겁다



 




 ㅣ시인의 말ㅣ

  

 나이가 들어가니 작고 소소한 일상에도 자꾸 눈길과 마음이 따라간다. 딱새 한 마리 처마에 집을 짓는 곳에도 오래도록 눈길이 멈춰 바라보았다.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 광고는 차마 눈을 뜨고 바라보기조차 힘들다. 함부로 뒹굴었던 소파도 고맙기 그지없고 길거리 포장마차의 불빛은 한없이 정겹다. 지붕 위의 닭처럼 멀뚱거리며 데면데면 지내던 사람들도 그저 가상하기만 하다. 무심코 던진 나의 말에 상처를 받았을 지나간 나의 주변들에게 미안하고 황송하다. 상대에게 무조건 완승을 거두려고 덤벼들었던 일상이 마냥 보잘 것 없다. 세월은 가장 큰 스승인가보다.  

 

 

 

 

 

 

  

 정용국 시인

 2001년 계간시조세계로 등단. 

 시집『난 네가 참 좋다』『동두천 아카펠라』외. 

 노산시조문학상 수상. (사)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