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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호 Vol.24 - 원구식

 

 

원구식 시인

신작시 2근작시 3편시인의 말


신작시 2편ㅣ

  

 마침표 화두

 

 

 마침표가 없는 시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다.


 대한민국 시인들은

 유독 이 차를 좋아한다.


 (이것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어느 날 이승훈 선생이 물었다.

 “원형! 왜 시에 마침표를 찍으라는 거요?”


 그날 마침 비가 와서

 우울한 이승훈 선생이 더욱 우울해질까 봐

 나는 서둘러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마침표가 화두예요.”


 그 다음 핸가 선생이 시집을 보내왔는데

 시집 제목이「화두」였다.

 펼쳐 보니 시마다 마침표가 

 밤하늘의 별처럼 박혀

 총총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오늘 마침 비가 와서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이승훈 선생을 생각하며

 그날 못 다한 이야기를 적어본다.


 “선생님, 저는 마침표라면

 365일 내내 강의를 할 수 있어요.

 여기엔 정말 엄청난 

 철학과 역사가 있답니다….”


 내가 목숨을 걸고

 시에 마침표를 찍는 이유 중에

 두 가지만 말하고

 시를 마치고자 한다.


 첫째, 교육상의 문제이다.

 마침표가 없는 문장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보라.

 시인들이여, 진실로 위대한 시인은 

 그 나라의 언어 자체를 위대하게 만든다.


 둘째, 우리는 지금 자동번역 시대에 살고 있다.

 시 또한 시대의 산물이다.

 마침표가 없는 시는

 자동번역이 되지 않는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사소한 문제에 집착하는가?


 오늘도 나는 젊은 시인들에게 묻는다.

 “왜 네 시에는 마침표가 없니?”

 순간 시인은 매우 당황해 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물어봤기 때문이다.






 


 꺽쇠에 대하여

 


 요즘 시집을 보면

 다음 페이지 첫 행에

 주먹만한 꺽쇠( >)를 자주 보게 된다.

 한 행을 떼라는 표시이다.


(정확한 이름은 교정 부호 ‘줄비움표’이다)


 아니 누가 교정 부호를 인쇄하나?

 이것은 인쇄의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

 더구나 이곳은 시인들의 신성한 백지 공간이다.

 누구의 허락을 받고 

 이 공간에 침입하는가?


 이것을 처음 인쇄한 것은

 지금은 사라진 <문예중앙 시인선>인데

 그때는 디자인으로 

 아주 조그맣게 표시하였다.


 그야말로 아이디어 차원이었는데

 삼류 출판사들이 흉내를 내더니

 주먹만 하게 커져 버렸다.

 그러더니 최근엔 메이저 출판사라고 할 수 있는

 민음사마저 이 꺽쇠를 인쇄한다.


 나는 이 꺽쇠에 부딪혀 넘어진다.

 매우 심각한 부상이다.

 운율도 

 의미도 

 여백도 

 흐름도

 십자가에 꺽쇠로 못 박혀 있다.


 이것은 폭력이다!



   


  

근작시 3편ㅣ

 

 신동국정운


 

 1


 이 파렴치한 것을 산산이 부숴버리자.


 대왕 세종은 한글을 창제 반포한 후  

 조선의 한자음을 통일하기 위해 

 <동국정운>을 편찬했다. 


 집현전 응교 신숙주가 교지를 받들어 

 서문을 지었는데, 이르기를,


 “아아, 소리를 살펴서 음을 알고, 

 음을 살펴서 음악을 알며, 

 음악을 살펴서 정치를 알게 되나니, 

 뒤에 보는 이들이 

 반드시 얻는 바가 있으리라” 하였다.


 그러나 당대의 현실음과 동떨어진

 이 외래어 표기법은

 16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사용이 전면 폐지되었다.


 2


 사람의 말이 갈라지면 

 사람의 혼백이 갈라지니

 종당엔 그 말을 쓰는 나라가 갈라지고 

 민족이 갈라진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남북한이 마치 별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별개의 국가라는 듯

 한국어판과 조선어판을 달리 발행한다.


 한국어판에는 후진타오, 저우언라이, 

 시진핑,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로 적고,

 조선어판에는 호금도, 주은래,

 습근평, 북경, 상해, 광주로 적는다.


 사소한 이것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이것이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에 

 직결된 문제라는 것을 

 한국인만 모르고 있다.


 豊臣秀吉(풍신수길)은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이고, 

 중국에서는 펑쳔슈지이며

 한국에서는 풍신수길이다,


 바보들아. 이것이 바로 언어를 가진 나라의 

 주권에 관한 문제임을 왜 모르는가?

 한자음 하나 통일하지 못하는 민족이 

 언감생심 어떻게 통일을 꿈꾼단 말인가?


 이 파렴치한 것을 산산이 부숴버리자.


 3


 한국인은 한글을 만들었고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

 바다를 건너간 인쇄술은

 구텐베르크에게 전해져

 인류 문명의 불길로 피어올랐다.


 한때 비록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지만

 하루아침에 선진국이 되었으며,

 민주주의에 대한 아무런 경험이 없이

 자기 손으로 스스로 대통령을 뽑고 

 자유로운 국회를 갖고

 사실대로 쓰고 마음대로 말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 한국인에게 뼛속 깊이 DNA에 

 각인된 한자음이 있으니,

 반만 년을 이어 내려온 이것이 바로

 현실음이고 표준음이다.


 그런데, 1986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무슨 일이 있었기에 

 우리는 습근평를 시진핑이라 하고

 모택동을 마오쩌둥이라 해야 하는가?


 일제 치하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어

 눈보라 속에 남부여대 어린 자식들 손목을 끌고 

 두만강 넘어 찾아간 용두레 우물가 용정을 

 어찌하여 룽징이라 하는가?

 연변, 연길, 도문은 어디 갔는가?


 잘못된 외래어 표기법,

 이것이 <신동국정운>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지난 40년 간 참을 만큼 참았고

 어를 만큼 얼렀고

 달랠 만큼 달랬다.

 말로 해서 되지 않는다면

 이 파렴치한 것을 산산이 부숴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국립국어원에서 아예 뿌리 뽑아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시감도 2013
                      

 


 13인의 시인이 도로로 질주하오.

 (모두 마침표를 찍지 않는 시인들이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제1의 시인이 요즘은 시에 마침표를 찍지 않는 게 대세라 하오.

 제2의 시인이 한심하다는 듯 그걸 이제 알았느냐 하오.

 제3의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마침표를 아예 다 빼버렸다 하오.

 제4의 시인이 실수로 찍힐 수가 있으니 조심하라 하오.

 제5의 시인이 시를 쓰기 전에 무조건 마침표를 빼는 것부터 가르친다 하오.

 제6의 시인이 그거 괜찮은 교습법이라 하오.

 제7의 시인이 산문시에서 마침표를 찍지 않아 성공한 시인이 있다 하오.

 제8의 시인이 그나마 마침표가 없어서 겨우 시의 꼴을 갖추었다 하오.

 제9의 시인이 그런데 아직도 마침표를 찍는 무식한 시인이 있다 하오.

 제10의 시인이 어느 사회나 꼴통이 있는 법이니 그냥 내버려 두라 하오.


 제11의 시인이 마침표를 안 찍으니 알딸딸해서 좋다 하오.

 제12의 시인이 마침표를 모두 빼버리니 골이 안 아파 좋다 하오.

 제13의 시인이 마침표가 없으니 뭔가 있어 보여 좋다 하오.

 13인의 시인은 마침표를 안 찍는 시인과 빼버린 시인과 그렇게뿐이 모였소.

 (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그중에 1인의 시인이 문학상을 받은 시인이라도 좋소.

 그중에 2인의 시인이 시 잡지를 내는 시인이라도 좋소.

 그중에 2인의 시인이 교과서에 실린 시인이라도 좋소.

 그중에 1인의 시인이 예술원 회원이라도 좋소.


 (쥐나 개나 마침표를 찍지 않는 세상이오.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13인의 시인이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아, 오늘 밤도 별들이 밤하늘에 마침표처럼 박혀 반짝거리오.

 

 

 

 

 

 식사시간


                   

 식사시간에는 부디 혀를 조심하오.

 맛에만 신경을 쓴 채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다 보면

 당신은 곧 알게 될 것이오, 어느새

 당신의 혀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당신이 씹어 먹어버린 것이오)


 입을 열어 이 음식의 예기치 않은 맛을 

 말하려 하지만, 당신은 이미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소.

 어디 당신뿐이겠소? 

 이 음식을 먹은 자는 

 모두 벙어리가 되고 말았으니 

 아무도 이 음식의 정체를 모른다오.


 (이 음식의 이름은 죽음이오)


 잠시 후, 입술과 입 주변이 마비되고

 얼굴과 팔다리의 근육을 움직일 수가 없소.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지만

 일어날 수가 없소. 당신은 이미

 앉은뱅이가 된 것이오.


 (그러니 하얀 식탁보에 공손히 두 손을 올려 놓으시오)


 잠시 후,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 식탁 앞에 앉을 것이오.

 눈을 들어 여인의 얼굴을 보려 하지만

 너무 눈이 부셔 볼 수가 없소.

 어디 당신뿐이겠소? 

 이 여인을 본 자는 

 모두 장님이 되고 말았으니

 아무도 이 여인의 정체를 모른다오.

 그러나 당신은 이미 알고 있소.

 지금 당신이 먹고 있는 음식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식사임을.


 (그러니 즐기시오, 매혹과의 식사를)



 

 

 

 

시인의 말ㅣ

 

 

 

 시인은 사소한 문제에 집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런 시 몇 편을 모아 보았다.

 맨 뒤에 양념으로 「식사시간」한 편을 넣었다.

 즐감하시길.




  




 

 원구식 시인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먼지와의 싸움은 끝이 없다』『마돈나를 위하여> 『비』가 있음.

한국시협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