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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호 Vol.06 - 이대흠



이대흠 시인

신작시 2, 근작시 3편, 시인의 말

 

 

   신작시 2편ㅣ

 

   รู้กัน รู้กัน(루칸)

  

 

   아무 데나 가자고 했지요
   아무거나 하자고 했지요

 

   산등성이의 흐름을 음악으로 읽어본 날이었습니다 당신은 깔깔거리며 당신은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에 올리며 당신은 검은색 선글라스를 해의 얼굴에 대어보고 당신은
   당신은 과자봉지를 빵 소리 나게 터트리는 걸 좋아합니다 당신은 목화 같은 목소리로 갑자기
 

   루칸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입술은 태국어처럼 동그랗고 모든 걸 미리 알고 있는 강 물결 모양 어딘가로 흐르고 있었지요

   당신의 말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언덕의 풀들이 밑동을 드러낼 때의 빛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뿌리가 이어진 식물들처럼
   보이지 않게 내통하고 있었을까요

 

   눈동자만 보아서 표정을 읽지 못했습니다
   태국어 รู้처럼 휘어진 길 끝에 우리를 놓고 싶었어요
   당신은 언제든 아무였으니까요

 

   당신의 아무를 방문하여
   당신의 아무를 열어보자

 

  아무의 소리를 들으려면 아주 커다란 돌을 귓속에 넣어야 합니다.

  

   * รู้กัน(루칸) : 이미 서로 알고 있다는 뜻의 태국어

 

 

 

   이거나 나쁜

 


   내가 산 주식은 가격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살아있는 아침입니다 커피를 마시고 콧노래를 부릅니다 거짓의 표정을 볼 수 없어서 안심입니다 낙엽들은 바깥을 시끄럽게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당신을 압축할 수 있다면
   코끼리 떼 같은 마음을

 

   풀어 놓으면 잉크처럼 물고기처럼 당신의 마음이
   다시 뭉치면 모래처럼 흩어질 것입니다

 

   베어진 벼 포기에서 새싹이 났습니다 논둑의 풀들은 채널이 많은 가을을 상영하고 있습니다 느티나무 껍질에서 얼굴 하나가 보입니다 어제까지는 보지 못했던 얼굴입니다 당신의 모습은 아닙니다

 

   이따금 구겨진 비닐에서 나뭇잎의 얼룩에서 당신이 보이는 것도 같았습니다만

 

   당신은 너무나 뚜렷해서 보이지 않습니다

 

   점심은 뭐 먹을 거야?

 

   말하는 갈치조림에도 김치찌개에도 두루치기에도 추어탕에도 칼국수에도 된장물회에도 짬뽕에도 없는 당신

 

   지금 웃었지요?

 

 

 

 

 


   근작시 2편

 

   마음의 호랑에서 코끼리 떼가 쏟아질 때

 

 

 

   당신에게서 문득 파닥이는 꽃을 받았습니다

 

   5초간,
   감정의 국경을 침범하지 않을 방법을 연구합니다

   당신이 내민 꽃 떼를 받지 않을 수 없어서 나는 이름에 갇힌 죄들을 모두 풀어 버렸습니다

 

   이러다 꽃에 물리면 온통 당신의 향기가 독처럼 퍼질 것입니다

 

   지금 떠나시렵니까?

 

   나의 마음은 충분히 방목 중입니다

 

 

 

 

   혈액이 흐르는 외투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의 순도는 친밀도와 비례합니다 공식입니다만 공식적인 것엔 도금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까이 사는 나무의 잎들은 빈번히 접촉하지만 서로의 영양분을 공유하지는 않습니다

 

틈 될 때 커피 한 잔 하자는 말보다는 언제 잠깐 몸 좀 빌려 쓰자고 하는 게 낫습니다 택배 차량에서 잠시 만났다 헤어지는 화물들처럼 우리는 만나고 이별합니다 몸만 사용하는 게 가능하지 않다면 감정은 혈액이 흐르는 외투일 것입니다 감정을 벗고 만날까요 어떤 경우에도 감정을 전당포에 맡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가슴 뛰는 설렘 속에는 이미 괴로움이 발생했습니다 그림자는 향기를 복사하지 못합니다 마음은 바빠서 몇 생을 후딱 딴 살림 차렸다가 돌아오기도 합니다 시소의 양 끝에 놓인 듯 오르내리는 감정들을 바라봅니다

 

 

 

 

   노랑을 입을래요

 

 


   검정이나 파랑이 아닌 노랑을 입을래요 노랑은 나를 함부로 내다버리지 않을 것 같아요

   편견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편견으로 오염시키고 싶어서
   외로워합니다

 

   내 말이 맞다니까!
   소리를 지릅니다

 

   맞다라는 말은 발목이 묶인 말 같습니다
   맞다라는 말은
   마취 효과를 발휘합니다
   꼬실 때는 좋습니다만
  

   진실이 아닙니다

  

   떨어진 빵조각처럼 나는 맞습니다
   떼를 지어 오는 개미들을 보며
   나의 편견이 나의 마음을

 

   뜯어먹고 있는 것을 봅니다

 

   안녕합니다
   묻는 인사보다는 나를 보여주는 인사가 더 필요합니다

 

   노랑을 입을 것입니다
   노랑 구두에
   노랑 넥타이를 하고

 

   걷겠습니다
   차가운 당신의 외딴방에
   봄을 켜겠습니다

 

 

 

 

   ㅣ시인의 말

  

   문장 바깥으로 발끝을 두는 일

 

 

 


   시인은 공교롭게도 문장 밖에서 문장을 이루는 꿈을 꾼다. 님 밖에서 님을 찾고, 사랑을 다 이루었을 때, 부족한 사랑을 찾아낸다. 궁극적인 시는 완전한 문장일 것이고, 완전하게 소통이 가능한 언어일 것이지만, 완전한 언어만이 온전히 시일 것인데, 완전한 언어는 미리 부재하기에 시인은 애써 불완전한 언어를 통해 완전한 세계를 이루려 한다.
   최근의 나는 이런 불완전한 언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어차피 시인은 실험실의 화학자처럼 언어의 조각을 가져다 이리저리 붙여보며, 새로운 언어를 꿈꾸는 자가 아닌가. 그러한 언어 조각이 쓸데없는 파편일지라도 시인의 실험은 계속되고, 그것이 이 세상에 없는 풀을 얻는 것과 같이 무모한 일일지라도 시인은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애초에 결핍된 것에서 완전한 것을 이루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마저 멈춘다면, 완성된 언어를 꿈꾸는 인간의 노력은 좌절되고, 인간의 언어는 박제화되어 화석이 될 것이다. 그렇게 발견한 새로운 언어, 그것이 설령 고드름 끝에 햇살이 부서질 때처럼 잠깐 빛나는 것이라 하더라도, 세상에 없는 투명하고 맑은 그 빛은 순간이나마 있는 것이었으므로 아름다운 것 아니겠는가.
   내가 바라는 것은 문장의 두부가 아니라, 문학의 새살이므로 문장 너머로 발을 내딛는다. 그런 미지를 향한 걸음을 당분간 계속하리라. 지난 몇 년간 내가 문장 바깥으로 걸어나가려는 시도를 조금씩 해보았던 것, 약간씩 비문을 섞어 쓰며, 시적 허용에 대해 깊이 생각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원소 상태의 언어를 결합하여 언어 결합에서 오는 화학작용을 연구하고, 일상어의 어법에서 벗어난 어법을 구사해 보는 것, 말의 근본으로 돌아가 일부러 산문적 구조에서 시를 시작해 보는 것, 이런 것들은 문장 밖에서 더 완벽한 언어를 찾고자 하는 나름의 고뇌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언어가 신의 언어에서 멀어졌기에 인간의 언어 바깥으로 외출하는 것은, 먼저 문법을 벗어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시의 시민이지 문법의 백성이 아니다. 문장의 종에서 벗어나 오직 말의 근본에 대해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반시적인 것에 가까운 것이겠지만, 오히려 언어의 틀로부터 벗어났기에 본래 언어에 가까운 것이리라. 이것은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로 완전한 신의 언어에 이르고자 하는 꿈이다. 말이여 뛰어라, 야생의 말 속으로.

 

 

 

 

 

 

이대흠 

1994년 《창작과 비평》 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귀가 서럽다』 『물 속의 불』 『상처가 나를 살린다』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장편소설 『청앵』 『열세 살 동학대장 최동린』 등. 산문집 『탐진강 추억 한 사발 삼천 원』 『이름만 이삐먼 머한다요』 『그리운 사람은 기차를 타고 온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