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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웹진《님Nim》신인문학상 발표


제1회 웹진 《님Nim》 신인문학상

 

 

 당선작ㅣ

 한강을 건너요 외 4편 

 


 사랑 같은 거 못한다고 나무라지 마세요

 혼자 죽은 파파 때문이라고 거짓부렁 하잖아요

 나는 살아있는 걸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가령 한강은 헤엄쳐서 건너는데 운전은 못 해요

 우리에게 어울리는 속도가 있을 거고요

 섬에서 자란 놈이 서울서 혼자 살면서

 서울도 섬이란 걸 알게 됐어요

 여기도 바람이 사람을 들쑤시고   

 비 온 뒤에 지렁이 길을 잃어요

 태풍 때면 오만 것이 물에 빠지고

 날이 풀리면 죽은 것이 둥둥 떠다녀요

 희미한 곳으로 막 떠나고 싶고요

 그래서 한강을 건너요

 바다를 건너 섬에 가는 시인들이 이상해요

 서울 사람도 차도 빌딩도 그럴 만하니까 그런 건데

 자연만 자연스레 자연인 것처럼 말해요

 자란 곳에선 시가 잘 안 써지나 봐요

 나도 여기 숨으려고 왔어요

 괴물이어도 사람들이 잘 몰라요

 여기 와서 처음 배운 건 헤엄치는 거였어요

 섬에선 공을 차고 놀았어요

 운동장에서 공을 차면 바다까지 굴러갔어요

 파도가 데려간 건 그럴 만하다는 걸 그때 알았죠 

 한강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열심히도 배웠어요

 물을 보면 몸 날리고 싶은 게 유전이어서요

 한강에 들어가면 보이는 건 없어도 

 감싸주는 게 있어요 희고 부푼 게 나를 만져요

 죽은 것들이 꿈에 자주 나오는데 내가 

 먼저 죽은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그렇대요

 죽은 것들이 속삭이는 단어들을 메모해요

 섬에 사는 친구를 위해 몇 개의 문장을 써요

 우리는 학교 때처럼 문장으로 안부를 전하고 있어요

 살아있으면 된 거야, 우린 그게 잘 안 돼요

 살아있어서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나 봐요

 건너다가 딱 멈춰서 나를 붙드는 것들에게 되물어요

 아직 괜찮으니 운전을 배우라고요? 

 미안한데 나는 그게 잘 안 돼요

 그러지 말고 애인이여, 

 우리 같이 한강을 건너요






 이른 오후의 감사

 


 마마는 세 시 반과 다섯 시 사이에 

 물이라도 끓여 놓고 절하라고 했다

 잘 되게 해 달라고 하지 말고 

 이런 곳이라도 오게 되어 감사하다 하라 했다


 나의 주방까지 바다 건너오시려면 

 신령님도 고단할까 싶었는데

 어느 쪽에 계시는지 들은 바가 없어 

 수증기 솟구치다 사라지는 모서리에 대고 절했다


 이삿짐 다 부려 놓아 비에 젖을 일 없고

 잔금하고 전입신고 마쳤으니 방랑할 일 없고

 인터넷 연결되었으니 혼자라 할 수도 없다

 이제 남은 건 기꺼이 감사하는 일


 물이 가장 낮아지는 세 시 반과 다섯 시 사이

 감사하기 좋은 시간

 생애 시계에서 나는 반환점을 돌았을까

 돌아가는 길에도 혼자 우는 새를 만날까 


 급히 부려 분별없는 짐들을 비집고 앉아 

 끓여 놓은 물에 녹차를 타 마셨다

 방바닥에 그어진 금을 만지며

 다짐이나 각오에 대해 생각했다


 여덟 시, 사루비아 핀 해안도로 등굣길 달리기와 

 4교시 체육 시간,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발리슛의 감각과 

 정오의 다이빙, 낮잠 후의 목마름과 

 네 시, 물 빠진 바다의 식어버린 열망에 대해 생각했다


 미처 버리지 못하고 끌고 온 책과 옷가지가 

 미안하다는 듯 몸을 꼬아가며 모서리에 쌓여 있었다 


 바라기는 바랐으나 바친 것 하나 없이

 물 한 그릇 떠 놓고 눙을 치고 말았기에 

 고스란히 쌓여 있을 오래된 빚에 대해

 독촉 한 번 오지 않은 자비에 대해


 어딜 봐야 할지 몰라 생의 모서리에 대고

 여기까지라도 오게 되어 감사하다 했다






 그 시간 공이 하늘색과 같아진다

 


 부분일식 중계를 보고 있어 도시에 메뚜기 떼가 출몰하거나 사람이 늑대로 변한다는 소식은 없어 기도발 센 날이라고 사람들이 소원을 빌어 나도 뭐라고 중얼거려


 야구 중계를 틀어 공이 포물선을 그리고 있어 외야수가 공을 쫓다가 멈추고 툭, 잔디로 공이 떨어져 공이 하늘색과 같아지는 시간, 누구도 외야수를 탓하지 않아


 공원 나무 사이로 사내가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어 그래, 모두들 뒤에서 헛스윙을 하며 살고 있다지 나 그네에 앉아 저절로 스윙하며 몇 개의 문장을 이어 부분일식도 다 끝나고 하늘도 어둑해서 이젠 별도 보이려는데


 나 그네에 앉아 흔들리며 바라고 있어 내일도 공이 하늘색과 같기를 잡아야 할 것을 놓쳐도 아무렇지 않기를 내겐 변명 같은 하루가 필요한 거야 오늘 이 말에 대해 생각한 거야 그 시간 공이 하늘색과 같아진다






 흐이히히히잉

 


 나는 당나귀 

 짐수레를 끌고 어디로든 가라 하면 가겠어 

 딸랑 종을 흔들며 그저 갈 테니 

 다리 꼬고 앉아 피리라도 불어 

 그렇지만 아무도 없는 샛길 건널목 

 빨간불에 건너라고 하면 

 채찍을 후려쳐도 안 가겠어 

 노랑꽃이 흔들리고 있잖아

 생각이 날 듯해서 그러는 거야 

 질겅질겅 되새김질하다 떠올랐지 

 사거리 같은 데서 비켜서 있었던 거 

 산등성이 너머로 눈길 주고 있었던 거 

 가는 새라도 눈에 들어오면 히죽 웃기도 하였던 거 

 그때 내가 뭐였는지 몰라도 

 기다리는 마음, 그것대로 괜찮았지 

 내 발목이 튼튼한 걸 보면 

 많이 걷기를 바라긴 바랐나 봐

 힝힝, 

 노랑꽃아, 노랑꽃아, 노랗기를, 

 노랗기를 오래 기다렸니?

 또 무엇을 기다리며

 까르르 몸을 떠니?






 구석을 들추니 버들씨 흩날리네

 


 오래 가는 버스 구석에 앉아 남의 뒤를 본다 

 앞서가는 점을 쫓아 나도 갈 것을 생각하면서도 

 그 한 발자국 떼지 않고 구석에서 훔쳐보기

 좋아하는 나의 뒤엔 막다른 곳


 떠나가는 것이 너무 많은 섬에서도 공항 동네 

 우리는 가출해도 멀리 가지 못하고 

 공항이나 항구에서 붙잡혀 돌아왔다

 밤바다 바위틈에 숨어 술이라도 마실라치면 

 상괭이 떼 놀리듯이 파도 위로 뛰어올라 

 점점이 멀어져 갔다


 볼 수 없어서 더 가지런한 뒤통수들

 자꾸 뒤를 쓸어내리다가 구석까지 들추었다

 떠나지 않기로 한 대신 기댈 곳을 찾아 맴돈 나의 

 구석에는 생각하다 생각하다 떨어져 나간 것들과 

 한 번도 떠나지 못한 것들 쌓였다가 

 봄바람 부는 밤이면 버들씨처럼 날아다닌다


 넓어지고 싶었고 깊어지고 싶었던 나의 바람과 

 어젯밤 잠결에 본 것에서 같은 소리가 난다

 꽃이란 게 그래, 구석에 살던 부스러기들이

 바람타고 부유하다 도달하는 곳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 


 뒤통수가 보는 것을 따라 보다가

 뒤통수가 웃으면 따라 웃고 

 뒤통수가 돌아보면 창밖으로 고개 돌려

 차 안에서 젖 물리는 애 엄마와

 눈 마주치고도 모르는 척 나의 위상 

 제자리걸음 해도


 버들씨 하나 살랑임에 우리가

 하루를 더 살았던 것처럼

 혼자 출렁이다 주저앉은 누구의 밤에 

 하얗게 떠다닐 수 있다면

 바람이 올 거라고 속삭여줄 수 있다면


 이런 바람 하나쯤 가져도 되겠지






 ㅣ당선소감ㅣ

 강을 건너 이제 그 마을로

 

 

 새가 나타난 것은 강물에 드러누워 저녁잠을 자고 있을 때였습니다. 얼굴이 따끔해서 깨고 보니 웬 부리가 나를 쪼아대고 있었습니다. 편지를 보내놓고서는 답장을 기다리지도 않고 잠만 처자는 게야! 타박하듯 새는 말하고는 내 얼굴에 카드 한 장을 떨어뜨리고 홀홀 떠나갔습니다. 비몽사몽간에 카드를 열어보니 마을 이름과 내 이름이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 마을로 와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떠올랐습니다. 강을 건너서 가려고 했던 곳이 어디였는지. 저 너머에서 가물거리다 사라지는 것들을 오랫동안 쫓아다녔습니다. 다른 세계에서 오는 신호인지 뭔지 모를 그것들이 어느 마을에서 나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말이 되기 이전의 말들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그 마을에 모여 산다고 했습니다. 침묵하는 사람에게 고요하게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지는 것들을 만들어서 흩뿌린다고도 했습니다. 그게 무언지 나는 무척 알고 싶었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나도 그걸 만드는 사람이 되거나, 아예 그것이 되어 흩뿌려지고 싶었습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몸을 일으켰습니다. 초대장을 받았다고 하자 오랜 친구는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도 가끔은 좋은 일이 있어야지. 엄마는 말했습니다. 이게 다 아빠 덕분이란다. 나는 마을로 가기로 한 날에 동그라미를 쳤습니다. 비로소 강을 건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껏 내가 강에 있었던 것은 이 강을 건너서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초대장을 접어 안주머니에 잘 넣고서는 팔을 휙휙 돌려봅니다. 이제 가겠습니다. 이 강을 건너 그 마을로 기꺼이.

 




 부영우 시인 

 1980년 제주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9년《경향신문》신춘문예 대중문화평론 당선. 

제1회 웹진님Nim신인문학상 시 당선.

 

 

 

 

 

  ㅣ심사평ㅣ

 체화된 감각과 심정적 동화(同化)의 너름새 돋보여

 

 

 웹진 《님Nim》에서 공모한 첫 신인문학상 응모에 예상을 상회하는 신인들이 모였다. 첫 회라는 우려를 불식시키는 이번 응모 열기는 만해(萬海) 선생의 대승적인 뜻과 얼과 문학정신을 기리는 웹진의 권위에 부합하는 의당한 지향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상당량의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후보는 여덟 명이었다. 거기서 한 번 더 걸러 최종 네 명이 최종 무대에서 각축을 벌였다. 전체를 놓고 보면 개성적인 차이와 심사위원의 개인적인 성향 탓도 있어 향후 시인으로 발돋움하는 데 큰 격차는 없어 보였다. 그러기에 한 분의 시인에 대한 선망을 시기적으로 앞세우는 일은 고심이 아닐 수 없었다. 

 김윤아의 「우주 관리사」외는 디테일한 표현들이 조직하는 시적 분위기가 구습의 관념을 새롭게 일깨워 펼치는 공력이 엿보였다. 순간순간 돌올하게 드러나는 구절은 시가 품는 삶의 입장으로 새뜻하고 종요롭기까지 했다. 다만 서정의 언술과 서사의 맥락이 좀 더 뚜렷한 문맥으로 도드라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최웅식의 「빈방」외는 일상과 경험의 기억으로부터 시를 불러내는 눈길이 찬찬하고 고통을 이완하듯 무겁지 않게 유희의 공간으로 이끄는 수완까지 돋보였다. 특히나 표제작 「빈방」같은 빼어난 시편은 놓치기 아까웠다. 작품 간의 편차와 약간의 모호한 분위기가 선고를 망설이게 했다. 유영의 「#유영 01」외는 연작시 형태의 집요하고 성실한 시적 추구와 관심, 자아에 대한 다양한 캡처 화면을 보는 새로움이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의 세계가 주는 개성적인 면모는 이 시인의 패기로 봐도 무방해 보였다. 다만 발화점이 좀 더 있어서 인화물질 같은 시적 폭발력을 기대하며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어렵지 않게 최종 선정에 이른 부영우의 「한강을 건너요」외 4편은 일단 능란한 시적 내레이션을 지닌 새로운 서정시의 범주가 태어났다는 반가움이 들었다. 가독성 있는 시적 언술 속에 체화된 감각과 심정적 동화(同化)의 너름새가 이미 한껏 농익은 지경을 보여준다. 시로 능숙하게 이야기할 줄 아는 것은 마치 ‘님’을 보기만 해도 사랑을 알게 되듯 걸림이 없는 노래의 목청을 지녔다. 당선을 축하한다. 선(選)에는 들지 못했지만 응모한 모든 분들도 새로운 도전과 시심이 당신들을 돕고 있다는 위로의 말을 전한다.

-심사위원: 이용헌  안차애  유종인(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