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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호 Vol.11 - 유종인


[ 조선그림 반려화 이야기 ]

 

하피첩(霞帔帖)이야기

 

다산(茶山)하면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는 유배와 그의 방대한 저작들이다. 그밖에 천주교 즉 서학과 관련한 불우한 가족관계와 정조, 화성(華城) 같은 것들이다. 지금에 와서 보면 우리나라 관광지 치고 유배지 아닌 곳이 거의 없다. 절승(絶勝)과 귀양지가 한몸이라는 아이러니를 두고 대부분의 유배된 인물들은 많은 저작과 학문적 성취를 배가했다. 당대에는 배척된 일신으로 고통스럽고 적막한 고업(苦業)이었지만 훗날 후대에는 눈부신 고난의 업적으로 회자될 일이었다.
  다산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라서 할 만큼 많은 저작들을 귀양살이에서 저술 창작을 해냈다. 해박한 지식과 인문학적 경륜과 탐독, 유배지에서 비록 묶인 몸이지만 자유로운 정신의 소요(逍遙)와 사유를 통해 눈부신 저작물을 생산해 냈다. 그런 다산에게 학문과 예술적 성취도 빼어난 것이긴 했지만 가족사적으로는 불우한 인고의 세월이었을 게다. 처절한 견딤을 안으로 되새기고 몸으로 가혹하게 견뎌야 했을 것이다.
  다산의 나이 스물일곱에 과거에 급제를 하였다. 그리고 13년 뒤에 다시 전라도 강진으로 귀양을 갔다. 한창 입신양명할 나이에 그는 언제 해배(解配)될 줄 모르는 고난의 출정을 하였다. 가정 경제는 온전히 부인 홍씨의 몫이었다. 정약용과 부인 홍씨의 사이에 원래 자식이 귀한 편은 아니었다. 슬하에 자식 아홉을 낳았다. 여섯을 가슴에 묻었으니 참척(慘慽)일 것이다. 아들 둘과 딸 하나를 건졌다. 부인 홍씨는 누에치기와 함께 세 자식을 키웠다. 당대 체제에 반골로 비춰졌을 유배자의 집안을 거느리고 다스려야 할 몫의 부인 홍씨의 고통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서른여덟에 얻은 자식도 세 살 되던 해에 죽었다는 소식을 귀양지에서 들었다. 그에 앞서 궂긴 자식들에 대한 다산의 적바림은 “구장이와 효순이는 산등성이에다 묻었고, 삼동이와 그 다음 애는 산발치에다 묻었다. 농아도 필시 산발치에 묻었을 거다”라 떠올리듯 적고는 “오호라, 내가 하늘에서 죄를 얻어 이처럼 잔혹하니 어쩌란 말인가”라고 비통함을 드러냈다. 애절함이 단장(斷腸)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당대 사회적으로 자신의 명운을 예단하기 어려운 막막한 귀양살이 십 년 째 되던 해에 부인 홍씨로부터 물건이 당도했다. 차마 생각만 해도 미안하기 그지없고 애틋하고 애절한 부인이 보내온 것은 혼례 때 부인이 입었던 활옷, 즉 다섯 폭의 다홍치마였다. '노을 치마' 란 뜻의 하피첩(霞帔帖)의 시작이 이러하였다. 아홉의 자식 중에 여섯의 자식을 먼저 보낸 부인의 신혼복이 빛바래 당도한 것이다. 다산은 어떤 심경이었을까. 만감이 물들었을 것이요 메마른 눈시울이 그렁그렁해지고 습습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하피첩의 전후 사정을 다산(茶山)은 이렇게 적바림했다. 

 

 

  하피첩 서문

 

  "내가 강진 귀양지에 있을 때,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 다섯 폭을 보내왔다. 시집올 때 입었던 붉은색 활옷이었다. 붉은빛은 이미 씻겨 나갔고, 노란 빛도 엷어져서 글씨를 쓰기에 마침맞았다. 마침내 가위로 잘라 작은 첩을 만들어, 붓 가는 대로 훈계하는 말을 지어 두 아들에게 보낸다. 훗날 이 글을 보면 감회가 일것이고, 두 어버이의 흔적과 손때를 생각하면 틀림없이 뭉클한 느낌이 일어날 것이다. 이것을 하피첩(霞帔帖)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는 곧 붉은 치마(홍군, 紅裙)을 돌려 말한 것이다. 가경(嘉慶) 경오년(1810, 순조 10) 7월에 다산(茶山)의 동암(東菴)에서 쓰다. 탁옹(籜翁, 정약용의 호 가운데 하나)
  (余在耽津謫中 病妻寄敝裙五幅 蓋其嫁時之纁衻 紅已浣而黃亦淡 政中書本 遂剪裁爲小帖 隨手作戒語 以遺二子 庶幾異日覽書興懷 挹二親之芳澤 不能不油然感發也 名之曰霞帔帖 是乃紅裙之轉讔也 嘉慶庚午首秋 書于茶山東菴 蘀翁)

  다시 가만히 되새김에 있어 은은하고 뭉클한 걸림이 있다. '훗날 이 글을 보면 감회가 일 것이고, 두 어버이의 흔적과 손때를 생각하면 틀림없이 뭉클한 느낌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 나는 어느 날 시대의 격절을 넘어 아비된 자, 어미 된 자의 마음은 동서고금이 큰 차이가 없음을 이렇듯 알아간다. 시대의 격절(隔絶)을 넘어 어느 날 나도 두 딸의 아비가 되고 그 두 딸이 자라나는 걸 보면서 여러 걱정과 앞선 염려와 불민한 아비에 대한 자책 같은 것이 일곤한다. 그럴 때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자녀들에게 썼다는 글귀는 너무나 지당하게 절절히 가슴에 배어든다. 세상 큰 전쟁의 영웅보다 자식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아비 되는 일이 더 지난한지도 모른다. 어느 땐 그 마음조림이 더 큰 자부(慈父)로 가는 길의 어려움도 허공에게 맡겨둘 따름이다.
  그렇듯 다산은 멀리 떨어진 부인의 처소에서 보내온 빛바랜 다홍치마를 잘라 하피첩을 꾸렸다. 그때가 경오년 1810년 초가을이라 적고 있다. 들판과 산야에 물들어오는 단풍의 기운 속에 남도에 유배를 사는 한 아비가 두 아들과 외동딸에게 건네는 '훈계'는 요즘 말로 꼰대의 지적질이 아니라 늡늡하고 습습한 아비의 참된 근심이자 처세훈(處世訓)에 값하지 않나 싶다.
  아들에게 쓴 하피첩의 필체는 전서(篆書)를 비롯 다양한 필체로 쓰였다. 그 시작은 앞서의 서문과 궤를 같이 한다.

 

  하피첩 본문 전서체 부분

 

  病妻寄敝裙, 千里托心素, 歲久紅己褪, 悵然念衰暮, 裁成小書帖, 聊寫戒子句, 庶幾念二親, 終身鐫肺腑. 
  (몸져누운 아내가 헤진 치마를 보내왔네, 천리의 먼 곳에서 본마음을 담았구려. 오랜 세월에 붉은빛 이미 바랬으니, 늘그막에 서러운 생각만 일어나네. 재단하여 작은 서첩을 만들어서는, 아들 경계해주는 글귀나 써보았네. 바라노니 어버이 마음 제대로 헤아려서, 평생토록 가슴속에 새겨 두어라.)

  아비된 자의 지엄한 당부와 걱정, 그리고 두 자식들이 세상 풍파 속에서 처세로 삼으라는 내리사랑의 절절함이 배어있는 전서체(篆書體)의 글귀다. 이 밖에도 부인이 시집올 때 입었던 활옷으로 꾸민 서첩이라는 이 하피첩의 조성 경위와 취지 등이 그윽하게 서려있다. 아들에게 주는 경계의 글귀 속에는 그 구구절절하고 애타는 아비의 심정이 글자 하나하나에 그윽하고 엄연한 잠계(箴戒)처럼 스몄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 아비처럼 시대에 불화하고 누군가에게는 미움 받는 사람이 되지는 말라는 것. 아비처럼 시대의 정적들에 눈밖에 나서 힘든 고초의 그늘에 들지 말라는 것일 것이다. 곤경에 처해 아픈 자식을 두고 싶은 아비는 어미는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세상 힘든 경로에 놓여 헤매이고 불안하고 해코지 당하는 일을 바라는 부모는 어디에도 없다. 하피첩은 자애롭지만 쓰라린 어미의 치마폭에 시대에 내쳐지고 버려진 재야 지식인 아비의 절절한 사랑의 근심이 합작한 문예적 콜라보레이션인 것이다. 다산의 나이 49살의 수제 책이 조성된 것이고 사신(私信)이 제첩(製帖)의 형태로 꾸려진 드문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필체로 구성돼 있고 그 글자 크기 또한 강조와 인상적 배율의 조정으로 인해서 다산 정약용의 필체를 두루 살피는 데도 도움이 되는 서첩이다. 종이로 배접을 하듯 입힌 아내의 오래된 치마폭이 자식들을 위한 경계와 처세와 사랑의 처세훈(處世訓)의 필첩으로 두 아들에 닿았을 때, 그 자식들은 어찌 허투루 어머니와 아버지의 그 간원이 서린 말씀의 글을 간과하며 살 수 있으랴.

 


  하피첩 서첩 구성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대의 압제와 불온한 세력의 질시(嫉視), 당파적 이해관계에 의한 모함과 투기(妬忌)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유교적 양반사회의 구조 속에서 자식만큼은 봉변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일념이 책을 꾸려냈다. 빛바래고 낡아진 아내의 새색시 적 치마폭이 글씨를 써서 서첩을 꾸리기에 좋았다는 다산(茶山)의 말 속에는 묘한 페이소스가 서려있다. 그 책이 된 치마폭의 붉은 빛은 바랬어도 거기에 담은 아비 다산의 글씨의 속내는 더없이 붉기만 했을 듯하다.

 정약용의 하피첩(霞帔帖)1810년 전라도 강진에 적거 중인 다산에 의해 만들어져 두 아들 학연(學淵,1783~1859)과 학유(學遊, 1786~1855)에게 당부하고픈 말을 그리듯 육필로 담게 되었다. 치마폭 붉은 자락으로도 책자가 만들어지는 사연은 아마도 다른 소재로도 책을 꾸려 우리의 마음을 전하는 계기의 한 전범이자 아이디어가 되지 않을까.

 

  다산 정약용 <매화병제도>, 비단에 수묵채색, 44.7×18,5cm, 1813,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그리고 하피첩은 여기서만 끝나지 않는다. 하피첩이 만들어진지 삼 년이 지난 뒤 다산은 시집 간 외동딸이 눈에 삼삼하니 밟혔던 것이다. 서첩을 꾸리고 남은 자투리 천 조각에 그림과 글씨를 넣었다. 꽃이 벙근 매화나무 가지에 앉은 새 두 마리의 발랄함과 정겨움이 봄빛에 번져 난만한 화폭이다. 거기에 서려둔 다산의 제시(題詩)는 시집 간 딸의 화평한 삶을 바라는 아비의 마음이 고스란히 에둘러져 있다. 다산이 출가한 딸을 위해 그린 다감하고 온화한 매화와 두 마리 새가 화폭 상단을 마치 자식을 품는 처마 그늘의 아량처럼 드리워 있다. 이 화폭은 1813년 7월에 딸에게 그려준 '매화병제도(梅花倂題圖)' 이다.

 

     파르르 새가 날아 뜰 앞 매화에 앉네
        매화 향기 진하여 홀연히 찾아 왔네
        여기에 둥지 틀어 너의 집 삼으려무나
        만발한 꽃인지라 먹을 것도 많단다
        翩翩飛鳥 息我庭梅  有烈其芳 惠然其來 
        爰止爰棲 樂爾家室  華之旣榮 有賁其實

 

딸에게 준 글씨와 그림이 화락한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데 글씨가 그림에 예속된 것이 아니라 서로 대등하니 다산의 뜻을 두루 나눴다. 오히려 글씨가 우선인 듯도 보이고 매화와 새 그림이 삽화처럼 보이기도 할 정도다. 향기로운 꽃가지에 둥지를 틀듯 출가한 딸이 선처(善處)에 머물기를 바라는 아비의 바람이 화폭에 서늘하게 스며있다.
  다산은 18년의 귀양살이에서 풀려서 집에 돌아온 나이가 58세이다. 그리고 부인 홍씨와 둘이 열여덟 해를 더 살다가 일흔 중반에 세상을 떠났다. 인생 중후반은 귀양살이 열여덟 해와 늙은 아내와의 마지막 열여덟 해가 공교롭게 나뉘듯 대별된다. 정약용이 작고하고 나서 그의 아내도 몇 해 후에 세상을 떠났다. 그 자식들에게 남긴 것으로서의 하피첩(霞帔帖)은 다산의 방대한 저작 중에서도 더 유별나고 각별한 애정이 드리운 육친(肉親)의 적바림이 아닐까 싶다. 다시 시대의 격절을 뛰어넘어 부모가 자식에게 참으로 남길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있고 없음으로 치부되는 각종 재산을 남겨 물려주기를 당연시하고 자식도 당연히 더 받으려 하지만 오르지 그것뿐인가. 정신의 가치와 영혼의 자음과 모음이 올올이 결구된 듯한 세상의 아비된 혹은 어미된 자의 늡늡한 속종을 어찌 슬하에 전할 것인가 되새길 일이 하피첩에는 돌올하다. 그 세상사에 마음살림을 어찌 주재할 것인가에 대한 유산을 돌아보자면 여기 참구(參究)할 만한 것이 이만한 것이 또 있으랴. 그것이 바로 하피첩이지 싶다. (끝)

 

 

 

 

 

유종인

1996년 《문예중앙》에 시 당선.
   2003년 《동아일보》신춘문예 시조 당선.
   2011년 《조선일보》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
   시집 『사랑이라는 재촉들』『아껴 먹는 슬픔』『교우록』『수수밭 전별기』『숲시집』,
   시조집『얼굴을 더듬다』『답청』.
   미술 에세이 『조선의 그림과 마음의 앙상블』등이 있음.
   지리산문학상, 송순문학상, 지훈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