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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호 Vol.08 - 유종인



[ 조선그림 반려화 이야기 ]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와 만남 이야기


 

 조희룡, <매화서옥도>, 106.1*45.6cm 간송미술관 소장

 

   한 사물, 즉 그것이 숨탄것인 외물(外物)인데 그것을 그윽이 오래 좋아함은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지병이자 지복이다. 더러는 이런 나무랄 수 없는 허물을 벽()이라 한다. 남을 해코지하지 않고 자신의 독락(獨樂)으로 너름새 있게 끌어들여 사는 여생은 간난고초의 곤고한 삶의 해방구이다. 우봉(又峰)이라는 예인에게 그것은 단연코 매화였다. 자연계에는 숱한 수목과 화훼가 있건만 그 중에 매화는 그에게 애인이자 그 이상의 반려(伴侶)이었다. 그 어여쁨 속에 변심과 변덕과 시들함이 갈마드는 인심이 또한 인간미라곤 하지만 매화는 그보다 더 완연한 매력의 살아있는 골동미인(骨董美人같은 마련이었다.

   주변은 크고 작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영(山影)의 자리인 듯하다. 여기에 크고 둥근 창을 가진 단출한 서옥(書屋)이 자리한다. 가르마를 탄 듯 두 갈래 천의 커튼 안쪽에 화인(畵人)으로 보이는 선비가 앉아있다. 선비는 화병에 한 가지의 매화, 일지매(一枝梅)를 바라보는 듯하다. 그럼에도 그 매화 한 줄기를 둘러싼 방 안의 여백을 너나들이하는 듯도 하다. 환한 실내는 선비의 내면의 연장선상인 공간인데 바깥은 거칠고 엄혹한 밤중이다. 주변은 아직 설산(雪山)의 기미가 완연한데 바위와 절벽과 능선과 수목이 칠흑의 어둠과 얼크러져 정연한 혼란으로 피어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어둠과 강설의 백야가 주인은 아니다. 오히려 이 거칠은 대기(大氣)를 종횡무진 주재(主宰)하는 것은 다름 아닌 매화의 산란과 신랄함이다. 이 모두를 초옥의 선비는 내다봄 없이 담담히 거느려 두루 완상한다. 아니 완상은 번지고 번져 서옥의 안팎을 그리고 매화가 휘두르는 산야와 거기에 눈길이 쏠린 우주의 기운과 화통한다. 호산(壺山)이여, 그대가 짐짓 그대 매화 그림 안에 들어앉아 그대 말년을 넘어 한 영원의 매화 그늘을 드리운 것을 예견했던가. 일찍이 그림 속으로 들어간 바탕은 안팎이 따로 없이, 이곳과 저곳의 격절이 없는, 시비(是非)가 꺼진 그 화인(畵人)의 큰 앎이 아니었을까. 그 지경이라면 그런 그림의 의경(意境)은 라오쯔(老子)가 일찍이 설파한 구설과 일맥상통하는 분위기가 갈마든다. 일찍이 노담(老聃), ‘()을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알 수 있고, 창문으로 엿보지 않고도 하늘의 도를 알 수 있다. 그 나감이 점점 멀수록 그 앎이 점점 적어진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행하지 않고도 알고 보지 않고도 밝게 살피며 하지 않고도 이루어 낸다. 不出戶知天下不窺牖見天道. 其出彌遠其知彌少. 是以聖人不行而知不見而名, 不為而成).’ 무릇 그렇다. 내남이 없이 조희룡은 매화와 더는 남일 수 없이 삼라만상을 하나씩 낙락하게 매수하듯 매화의 오지랖 안에 끌어들인 격이다. 매화에 둘러싸여 매화 그늘에 제 그림자를 잇닿아 적시며 아마도 호산(壺山) 조희룡은 말년을 보냈지 싶다. 그러므로 매화가 지지 않는 영원한 멈춤의 생동을 그림으로 남겼다. 밤중에 꽃피어 흩날리는 그 처연함과 서늘한 찬란과 고졸한 환희를 섭외한 화폭은 현재진행형이니 불멸은 여기에 꼬투리를 잡혔다.

 

조희룡, <매화서옥도> 1-1

 

   화훼 중의 왕, 매화는 그리하여 꽃 무리 중의 우두머리 화괴(花魁)인데 그 화려함으로 압권이 아니다. 화려함이라면 너른 품세의 부용꽃도 있고 고혹스런 모란도 있으며 매혹적인 장미도 있다. 화려한 외모로야 매화에 버금가는 꽃들이 한둘이 아니다. 무릇 매화의 어여쁨과 매력은 그 성긴 꽃핌과 그 질박한 가지의 자태와 그 향기의 그윽한 개결함에 있다. 옛 선인들은 그런 매화향을 코로 듣는 취향(臭香)이 아니라 귀로 듣는다 하였다. 그리하여 눈으로 보는 것마저 너나드는 문향(聞香)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蠹窠中得一故紙 乃廿載前 所作梅花書屋圖也 蓋遊戱之筆 而頗有奇氣 爲烟煤所昏 殆若百年物 畵梅如此 況人乎 披拂之餘 不覺三生石上之感 丹老

   “좀 먹은 속에서 묵은 그림을 얻었다. 바로 스무 해 전에 그린 매화서옥도였다. 그저 장난스러운 손놀림이나, 제법 기이함이 있고 연기에 그을려 거의 백년은 된 것 같으니 매화 그림이 이런데 하물며 사람이랴! 펴보고 나니 죽었던 친구를 다시 보는 느낌을 받는 것 같구나! 단노

 

   매화를 얼마나 좋아하여 얼마나 매화를 많이 그렸으면 우봉(又峰) 자신도 제 그림을 낯설게 발견했을까. 그것도 이십 여 년 전에 그린 그림을 재장구쳤으니 그 감회는 낯설면서도 묘한 울림이 가슴에 돋았을 것이다. 좀이 슨 화폭을 펴보면서 그 저려오는 심정은 마치 죽었던 친구를 다시 보는 느낌이라 한다. 그 누구로 알리 없은 임자도((荏子島)에 유배된 화인(畵人)의 절절한 속종이 여러 해 만에 다시 찾은 <매화서옥도>에 화제(畵題)로 스무 해의 격절을 넘어 추수하듯 뒤따른 격이다. 스무 해 전에 그리고 다시 자못 잊고 지내다 그리고 잃어버린 감마저 있다가 다시 제 그림을 어렵사리 만났다. 그리하여 그 난만하게 흩날리는 밤의 눈[]과 매화 천지 한귀퉁이에 제발(題跋)을 쓰는 붓끝은 사뭇 떨리지 않았을까. 좀 먹은[蠹窠] 매화그림 한켠에 오랜만에 다시 먹을 묻혀 소회를 적는 순간, 마른 매화 그림에 생기가 돌고 매화 향기는 다시 충전돼 산지사방으로 번지듯 휘감아 돈다. 먹물이 마른 종이에 닿아 번질 때의 그 적막하고 습윤(濕潤)한 기척은 절도에 유배된 화인에게 또 다른 해방구의 기운을 건네주지 않았을까. 만남이다. 스스로 짓고 보관해 뒀다가 잊고 있었다. 그리곤 잃은 듯이 여러 해를 건넜다 다시 우연을 가장한 인연처럼 만났으니 그림과 화인은 서로를 한눈에 알아봤을까. 그림이 먼저 약간의 거적눈을 한껏 밀어 올리고 매수(梅叟) 영감에게 여기 산영(山影)이 드리운 매화숲의 서옥(書屋)을 알아보겠느냐 묵언 속에 화폭으로 똥기지 않았을까.

 


조희룡, <매화서옥도> 1-2 화제(畫題) 부분

 

   그의 매화 기호(嗜好)는 유난하고 별스러웠다. 오로지 매화만 그윽이 마음에 두고 매화에 홀린 광인(狂人)처럼 삶을 보냈다. 그의 저서 석우망년록(石友忘年錄)를 보면 나는 매화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있다. 매화 그림을 그린 큰 병풍을 침실에 두르고 매화 시가 새겨진 벼루를 쓰고 먹은 매화서옥장연(梅花書屋藏烟)을 쓴다. 매화 시 100수를 짓는 것이 목표이고 내가 거처하는 곳을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라는 편액을 단 것은 매화를 사랑하는 내 뜻이다. 매화 그림을 그리며 목이 마르면 매화차를 마신다.’라고 제딴의 매화벽(梅花癖)을 인생의 더할 나위 없는 만남의 기조로 삼은 듯이 적바림했다. 매화로 울울창창한 숲을 이뤘다는 중국의 나부산(羅孚山)을 동경하는 마음이 자자했다. <매화서옥도>가 그러하듯 산 가득 매화가 만발해 향기 나는 눈의 바다 같다는 함의의 향설매(香雪梅)를 줄곧 염두에 두고 지향하였다. 그 자신 이런 향설매 그림으로 집안을 두루 채워서 중국의 나부산의 일부를 자신의 현실로 만들고자 하였다. 임자도에 유배당해서도 매화도를 그려 쌓고 주위에 매화를 심어서 본래의 당호의 분관(分館)처럼 소향설관(小香雪館)’이라 했다. 아득한 곳에 있는 매산(梅山)의 정취를 자신의 주변에 끌어들이는 것도 또 다른 만남의 기척이다. 중국의 나부산을 옮길 수 없음에 그 향설매의 기운을 그림에 화폭마다 실어 일으키고 소소한 매화목을 적소(謫所)에 심어 계절마다 매화의 생동을 곁에 두고 즐기려 하였다. 이룰 수 없는 것은 꿈이지만 그 꿈을 현실의 곁에 데려와 앉히는 것은 실천이다.

   화폭은 족자 형식으로 지본 바탕에 수묵담채로 화제 밑에 조희룡인(趙熙龍印)’을 새긴 백문방인(白文方印)우봉(又峰)’이라 돋을새김한 주문방인(朱文方印)이 각 한 과()씩 찍혀있다. 우봉의 스승인 추사(秋史)가 그랬거니와 그의 제자인 조희룡 역시 귀양살이로 적잖은 세월을 보냈다. 귀양살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 만남을 제한하는 일이다. 탱자나무 가시울타리를 두른 곳에 위리안치(圍籬安置)가 됐든 절도(絶島)에 가두듯 적거(謫居)에 들게 했든 그것은 다양한 만남을 제약하는 고독의 형별에 다름 아니다. 인간이라는 말 속에서 관계를 빼앗아버리는 단독자의 고독과 고립으로 징벌하고 치죄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그런 삶에도 불구하고 화인(畵人)은 그 척박한 환경에서 만남을 소슬하게 이끌어 냈으니 우봉에게 있어서는 그게 매화였다. 단순히 자연물로서의 매화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의탁한 바도 있지만 그 소슬하고 낙락한 탐매(探梅)를 통해 화업(畵業)은 더 웅숭깊어졌고 그의 세상 이해와 식견은 더 그윽한 품격으로 전환되었다. 물론 세상이 준 치죄와 징벌의 고독은 더 그윽한 실존의 예술적 고독으로 바뀔 수 있게 핍진한 견딤과 자족의 수양이 동반돼야 했으리라.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이런 고독을 오히려 삶의 배경으로 두르고 자족하여 산 풍류객이 있다. 바로 임포(林逋)가 그렇다.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하면서 매화와 학을 키우며 즐기며 세상의 명리와 출세와 격절하였다. 매화를 아내처럼 여겼고 두루미 학을 자식처럼 아꼈다. 그것이 매처학자(梅妻鶴子)였으니 괴이고 아끼는 자연의 숨탄것과 격의(隔意)를 텄으니 이것은 풍류의 실제이다. 조희룡에게 매화는 이렇듯 만남을 제약한 곳에서 더 큰 만남의 매개이자 그 안에 시루처럼 자신의 예술을 안쳐 격절의 세상을 넘나들며 그림을 시루떡처럼 켜켜이 쪄내는 뒷배이자 다솜의 견인차인 셈이다. 그는 푸른 빛만 감돌았을 여름 매화 곁에서도 말라 부스러진 하얀 시룻번처럼 날리는 매화를 눈처럼 가슴 안에 삼삼히 보았을 것이다. 없다는 곳에서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은 우선은 그 마음의 간절함이다. 그림이 또한 그런 간절함의 붓끝에서 만남을 부려가는 선묘(線描)와 묵법(墨法)이 아니겠는가

 

 

 

 

 

 

유종인

1996년 《문예중앙》에 시 당선.
2003년 《동아일보》신춘문예 시조 당선.
2011년 《조선일보》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
시집 『사랑이라는 재촉들』『아껴 먹는 슬픔』『교우록』『수수밭 전별기』『숲시집』,
시조집『얼굴을 더듬다』『답청』.
미술 에세이 『조선의 그림과 마음의 앙상블』등이 있음.
지리산문학상, 송순문학상, 지훈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