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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호 Vol.02 - 전기철

 

   

 

[ 현대선시읽기 2 ]

 

 

 

김일엽  「오도송(悟道頌)」

 

    

古人의 속임수에

헤매이고 고뇌한 이

예로부터 그 얼마련고

큰 웃음 한 소리에

雪裏桃花가 만발하여

산과 들이 붉었네.

      

불교시와 선시는 다르다. 불교시가 불교의 교양이나 지식, 염원, 의지, 수행을 시의 형식으로 표현한 시라면 선시는 선()의 언어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불교시가 불교의 경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선시는 선의 생활에서 얻어진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교종과 선종만큼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 주체가 불성(佛性), 여래장(如來藏)이라면 선()에서의 주체는 평상심, 본래심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경전이나 스승의 말씀을 중요시하지만 선에서는 경전이나 조사의 말씀이 아니라 수행자의 직접적인 체험이 중요하다. 원오극근이 진리는 조사나 성인도 전할 수 없다고 한 것이나, 운문(雲門)날마다 좋은 날이라고 하거나 황벽(黃檗)이 조사의 말을 달달 외는 술찌개미나 먹는 놈을 비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므로 불교적 취향이나 지식에서 비롯한 시는 불교시이지 선시라고 볼 수 없다. 파릉(巴陵)의 은 주발 속 눈처럼 크게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불교시와 달리 선시는 선의 평상적 체험에서 오는 시적 표현이며, 이 시 형식은 동아시아의 불교적 도덕적 교양에서 비롯한다.

오도송(悟道頌)은 선시의 정수이면서 선적 서정시에 이르는 첫 단계의 시이다. 많은 선승들에게 오도송이 있다. 선승들은 깨달음을 지향하고, 그 깨달음을 생활 속에서 시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도송도 오도송 나름이어서 그 오도송을 보고 그의 깨달음의 정도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오도송으로 그의 깨달음의 정도를 측량하는 것은 그 시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라고 할 수 있다. 오도송은 선사(禪師)가 수행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의 순간적 표현이거니 그 기쁨을 표현한 시이다. 선불교의 단계적 깨달음은 한이 없으며, 최후에는 입전수수(入廛垂手)에 있다. 자칫 오도송에 갇히면 입전수수에 이르지 못하고 만다. 선시야말로 입전수수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오도송은 깨달으면 평상심에 이른다는 실천적 언어의식을 보여준 선승의 시이다. 그만큼 오도송은 선시의 한 축을 이루며, 일반적 서정시와 하나가 되어 가는 길 위의 시이다.

김일엽 시인은 일본 유학파인 신여성으로 승려가 되어 세속의 이목을 많이 끈 바 있다. 그는 만공 스님을 만나 수덕사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승선원인 <견성암>을 열게 한 계기를 만든 스님이다. 그는 그곳에서 25년간 산문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견성암>에서 38세에 한 소식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위의 오도송은 그의 세납 73세인 1968711일이다. 산문에 대한 이해와 선의 길에 대해 익을 대로 익은 시기에 나온 현대시조이다.

초장 1행의 古人은 수많은 가르침을 준 불조나 스승들을 가리킨다. 그들의 말씀이나 행적은 수행자인 선승에게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스스로 체득하지 않고는 어떤 깨달음도 얻을 수 없는 선승에게 그와 같은 말씀들이나 행적은 고뇌의 자료에 불과한 지해(知解)여서 수행자에게는 방해물일 뿐이다. 2행에서는 그에 때한 깨달음을 자신의 수행과정, 즉 체험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중장 1행에서는 자신이 서 있는 지점을 깨닫는 현재의 모습이다. ()이란 현재 여기의 마음을 닦는 수행이다. 그걸 알자 큰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에 그 결과로 보이는 현상이 종장인 분별을 떨쳐 내는 마음이다. 깨달은 주체는 설리(雪裏), 눈 속에서 도화(桃花), 복숭아꽃이 만발한 것을 본다. 경계를 무너뜨리고 분별을 떨쳐냄으로서 평등심(平等心)을 보여주고 있다.

그 전에 쓴 <한 닢>이라는 시에서는 선시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가냘픈 한 잎새가

폭포중에 떨어져서

으깨고 조각나도

다만치

그 넋()일랑

대해(大海)까지 이르과저.

 

선과 시가 아주 잘 조화된 시조이다. 읽으면 바로 우리의 가슴으로 돌진하는 시적 성과이다. 선시가 서정시로 변전하는 까닭을 잘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여린 잎새가 폭포 속으로 떨어져 으깨지고 조각나도 다만치그 넋이 바다까지 이른다, 곧 깨달음에 이른다. 여기에서 깨달음이란 그저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4행의 다만치는 의지의 표현이면서 획기적인 시형식의 파괴이다. ‘-라는 말이 갖는 의지와 시적 성취는 순수 서정시로서 아주 좋은 전범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시는 입전수수의 시로서 궁극적 서정시이다.

 

 

 

 

 

  

전기철

 

   1988년 『심상』 등단.

   시집 『나비의 침묵『풍경의 위독『아인슈타인의 달팽이『로깡땡의 일기,  누이의 방등이 있음.

   2015년 현대불교문학상,  2019년 이상 시문학상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