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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호 Vol.35 - 이정란



 아무래도 잎사귀

 이정란






 꽃보단 잎사귀

 이유가 뭐야 묻는 당신에게
 바람 물들이는 꽃잎, 층층 구름 피우는 이파리

 어떻게 말을 해도 이유에 가닿지 않아

 극한에 부딪쳤을 때 마음 밖으로 심장 한 잎사귀 흘려보내지

 꽃과 함께 물오른 가지는 새의 긴 숨을 향해 자라지

 아무래도 이유보단 잎사귀

 잎사귀는 새에 가깝다
 새는 찾아와 잎사귀에 마른 눈물을 묻고
 잎사귀는 공기에 섞여 한 점 아련해진다

 올바로 뜬 눈으로도
 살아 있는 죄 묽히지 못해

 이파리에 오래 시선을 두면
 입술 주름에 숨어 있던 온갖 이유가 연기로 사라진다

 언뜻, 연기보다 높이 뜬 새의 무리가 세상 것이 아닌

 울음 하나 떨어뜨리고

 한 뼘 안짝 이유를 찾느라 서럽도록 붉던

 꽃 지고
 나 피었으니








  

 이정란 시인
 1999년《심상》으로 등단. 
 시집『눈사람 라라』『이를테면 빗방울』『나는 있다』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