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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호 Vol.35 - 김은닢



 에코백

 김은닢






 입구는 열고 바닥은 감추고 싶은 걸까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비스듬히 열린 문이 누군가 부르고 있군
 그럴 때 에코백은 빈집
 빈집에 감긴 고양이의 눈동자 
 빈집은 덤불 빈집은 새와 구름 빈집은 당신​

 글썽이는 입술로 메아리가 사라지는 벽에서
 담쟁이가 가느다란 발에 매달려 웃는다

 당신이 내민 에코백에 손을 넣어 더듬은 것이
 가시덤불과 쥐의 꼬리, 비늘발고둥이 기어다니는 
 흔들리는 바닥이었을까

 가로수의 뭉툭한 줄기가 다시 잘린다
 퉁퉁 부은 발목뼈가 어긋난다
 어긋날 걸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푸석한 얼굴로 빗줄기를 받아내는 길바닥에
 아귀처럼 불을 밝힌 심해가 끌려 나온다
 수심 이천 미터 암흑에서 금속으로 만든 발을 가진 고둥이 기어 나온다
 두 개의 심장이 붉은 심벌즈처럼 부딪치자

 무너지는 벽과 일어서는 벽, 흙 비늘을 털고 허물을 벗는 벽과 벗어도 벗어도 두터운 벽, 기대고 있던 벽에 송곳으로 별을 그리자 스크래치라고 중얼거리는 당신이 퇴적층에 쌓인다 밧줄에 걸려 있는 녹슨 칼날들

 늪에서 한발씩 빠져나온다 발을 떼면 끈적한 늪의 손 늪의 발이 발목을 감고
 질퍽대는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발목이 따듯해지지 않는다 

 허기를 감춘 잎사귀가 흔들리고 있다
 덩굴손은 금방이라도 손등을 핥을 것 같군
 시드는 발화를 쥐고 팔랑이는 손바닥들

 우리는 서로에게 뻗어가려는 팔을 안쪽으로 접으면서 걷는다
 문틈에서 자라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출렁이는 바닥을 트램플린처럼 딛고 통통 튀어 오르며 웃는다 
 불현듯 해구로 푹 꺼질 때까지





  

 김은닢  시인
 2022년《시인수첩》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