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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호 Vol.34 - 이진우



 축사

 이진우






 마지막으로 짧게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다 여러분들 앞날이 걱정돼서 하는 말이니 딴짓하지 말고 집중해서 들어주길 바랍니다.
 
 절대로 속으시면 안됩니다 여러분. 늙기 전에 죽고 싶다고 악쓰던 사람들 있죠?* 그 사람들 아직까지 살아 있습니다. 그냥 살아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추억까지 팔아가며 큰 돈을 벌고 있죠. 너무 충격적인 얘긴가요?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서 말씀드립니다만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지미 핸드릭스로 갈아 탈 생각이라면 하루빨리 그만두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신이 될 자신이 있습니까?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까? 제발 그렇다고 하지 마십시요. 그건 자신을 속이거나 자신에게 속을 만큼 멍청하거나 둘 중 하나고 대개의 경우 후자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기껏해야 엄마가 사준 기타에 불이나 지르다 잡혀가겠죠. 어린 날의 치기로 저지른 경범죄에 발목이 잡혀 취직도 못한 채 자신을 담기에 세상이란 그릇은 너무 작다며 방구석에서 한탄하다 늙어가겠죠. 

 방금 어디선가 시드 비셔스라고 중얼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제발 내가 너무 늙어버린 나머지 청력에 이상이 생긴 것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병신으로 산다는 건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만만한 일이 결코 아닙니다. 엄청난 각오가 필요한 일이지요. 무언가에 대해 일말의 재능도 없이 유명해질 수 있다는 것 또한 일종의 재능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그렇게 방만하고 무책임한 연애를 할 만한 충분한 용기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마음에 담아 둔 사람의 SNS에 들어가 몇 번을 고민하다 벌벌 떨면서 힘겹게 좋아요나 누르고 후회하는 당신들이? 차라리 기타를 불태우십시요. 그 편이 훨씬 싸게 먹힐 거라고 이 사람은 확신합니다.

 이쯤 되면 여러분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이름만 남아 있을 겁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저는 뭐 안 해 본 줄 아십니까? 저도 여러분 만할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보나마나 커트 코베인이겠죠. 결국엔 또 커트 코베인이겠죠. 커트 코베인이라니, 세상에! 그동안 세상이 몇 번은 바뀌었는데 다시 그놈의 커트 코베인이라니! 지겹지도 않습니까? 이제는 티셔츠 장사밖에 못 하는 사람한테 왜들 그리 집착하는 겁니까? 서서히 사라지는 것보다 한순간 불타올라 사라져버리는 게 낫다는** 같잖은 핑계나 대면서 도망쳐버린 나약한 인간일 뿐인데 말입니다!

 제가 좀 흥분했군요. 미안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짧게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남기고 싶은 말에 실패하는 데 실패한 적 없다고*** 쓰신 분이 계시더군요. 다시 쓰시길 바랍니다. 실패하는 데 실패한 적 없는 데 실패했다고, 애초에 실패해 본 적 없으니 늙기 전엔 죽을 방법이 없다고, 그래도 하나도 안 우울하다고

 너도 내 나이 한 번 돼 봐라

 졸업 축하해요 커트 코베인



 * The Who <My Generation>
 ** 커트 코베인의 유서 중에서
 *** Nirvana <You Know You’re Right>












  

 이진우 시인
 2023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