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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호 Vol.40 - 전형철



 
 아홉

 전형철





 빙판 위에
 아이가 줄넘기를 한다

 등 뒤에 줄이 둥근 아치를 만들자
 과거는 휙 미래로 바뀐다

 발밑을 내려다보지 마
 고개를 숙이지 않아야 통과할 수 있는 다리라 생각해

 모두가 불타고 있는데 
 아무도 소리 지르지 않은 사고 현장처럼

 신념을 붙잡고 있을 수만은 없는
 오늘 운동장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

 낙엽이 걸어가고
 어느 날부터인가 알고 있던 모든 이름이 낯설어지고

 제자리를 뛰는데 
 자꾸 앞으로 나아간다

 바닥을 긋고 가는 머리칼

 해파리 촉수처럼 
 트램펄린을 짚던 손이

 모르는 방향을 두드릴 때

 화석에서 되살아난 실라캔스 한 마리
 발밑에 천천히 헤엄쳐 온다

 빛이 들지 않은
 달의 계곡

 핏빛 그믐달을 넘으며

 겹겹의 
 장미 꽃잎이 구른다









  

 전형철 시인
 2007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고요가 아니다』『이름 이후의 사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