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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호 Vol.40 - 김도경



 
 내가 아끼는 세계

 김도경





 “삼촌 우리 집에는 비가 내리게 하는 자판기가 있어”

 “누르면 집에 비가 와, 신기하지?”


 *


 네가 경험할 세상을 상상해
 날씨를 조종하고
 산에 장난감을 숨겨두는

 네가 만들어갈 우주가 궁금해
 착한 사람이 착해서 이길 수 있는
 나쁜 사람은 나빠서 벌받을 수 있는

 어른들이 너무 나빠서 
 지쳤는데 
 문을 열자 네가 달려와 품에 안겼어

 과자를 해맑게 주고
 방을 소개해 주고
 이름 대신 호칭을 부르며
 우리가 가족임을 상기해 주고

 네가 될 어른의 모습을 꿈꾸게 돼
 나보다 괜찮은
 나보다 당당한
 적어도 너희 엄마는 너를 그렇게 키울 거란 믿음이 내게는 있어

 너희 집에 있을 때
 내게도 비가 왔어
 그 비는 축축하지도 차갑지도 않았어
 네가 만들어낸 비임을 단숨에 깨달았고 
 꿈속에 너는 날씨를 다루는 요정일 거라 믿게 되었고

 아침이 되자
 까치집 진 네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보며 웃었어
 나도 따라 웃었어 

 그게 우주 같아서
 사랑을 믿게 돼


 *


 “삼촌 엄마한테 아기가 생겼대”

 “그러니까 엄마는 조심해야 돼”


 *


 또 다른 소우주가 생기는 것도
 네가 꽤나 괜찮은 형이 될 거라는 것도
 내가 무조건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순간도
 
 그게 사랑 같아서
 너를 믿게 돼










  

 김도경 시인
 2021년《아시아》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숨과 숲의 거리』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