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끼는 세계
김도경
“삼촌 우리 집에는 비가 내리게 하는 자판기가 있어”
“누르면 집에 비가 와, 신기하지?”
*
네가 경험할 세상을 상상해
날씨를 조종하고
산에 장난감을 숨겨두는
네가 만들어갈 우주가 궁금해
착한 사람이 착해서 이길 수 있는
나쁜 사람은 나빠서 벌받을 수 있는
어른들이 너무 나빠서
지쳤는데
문을 열자 네가 달려와 품에 안겼어
과자를 해맑게 주고
방을 소개해 주고
이름 대신 호칭을 부르며
우리가 가족임을 상기해 주고
네가 될 어른의 모습을 꿈꾸게 돼
나보다 괜찮은
나보다 당당한
적어도 너희 엄마는 너를 그렇게 키울 거란 믿음이 내게는 있어
너희 집에 있을 때
내게도 비가 왔어
그 비는 축축하지도 차갑지도 않았어
네가 만들어낸 비임을 단숨에 깨달았고
꿈속에 너는 날씨를 다루는 요정일 거라 믿게 되었고
아침이 되자
까치집 진 네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보며 웃었어
나도 따라 웃었어
그게 우주 같아서
사랑을 믿게 돼
*
“삼촌 엄마한테 아기가 생겼대”
“그러니까 엄마는 조심해야 돼”
*
또 다른 소우주가 생기는 것도
네가 꽤나 괜찮은 형이 될 거라는 것도
내가 무조건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순간도
그게 사랑 같아서
너를 믿게 돼
김도경 시인
2021년《아시아》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숨과 숲의 거리』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