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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호 Vol.40 - 이병금



 
 말풍선과 가문비나무

 이병금





 *

 기찻길 옆 납작한 집에 사는 오늘이란 이름의 사람은

 보슬비 내려 쌓이는 날

 좁쌀보다 작은 물방울들이 공중에 훤히 길을 열었다고 생각하고는
 그 길의 지름길로 말풍선을 띄워 올린다

 실 끝을 잘 붙잡고

 원통 지나 대암산 용늪에 사는 가문비나무 찾아 나선다


 **

 해발 500m에서 2,300m의 차갑고 맑고 깊숙한 흙과 바람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 향해 푸르른 머리카락을 곧추세운 친구 만나러 가는

 길
 제비동자꽃을 보았을 때

 얼마나 크게 숨을 들이켰는지 말풍선이 용늪보다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가문 날 저문 비 내리는 나무 곁에 순식간에 내려앉았다


 ***

 조금 늦었군

 여기도 보슬비가 피어나고 있네

 어디가 좋을까?

 네 뿌리 근처라면 다 괜찮을 거 같아

 오랜만에 길이 열렸어

 삼 년 만인가? 그때처럼…… 

 뾰족한 잎을
 어루만졌을 때
 입속의 혀처럼
 보드라운 잎의 결에 놀라
 만지고 또 만지면서
 아주 오래전 
 갈림길에 두고 온
 찢기어졌던 마음이 되살아나서
 둑이 넘쳐나는 줄도 몰랐다
 
 입술 같기도
 눈빛 같기도 
 여린 뼈 같기도
 파란 바늘 같기도
 스님 향주머니 같기도
 비늘 잎새 너머를
 바라보았지만
 잔뜩 귀를 세워
 떠나간 나무가 하는 말을
 들어보려 했지만










  

 이병금 시인
 1998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저녁흰새』『어떤 복서』, 평론집『시 읽기의 새로움』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