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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호 Vol.40 - 박우담



 
 님이 다녀가셨다

 박우담





 꿈속에 시 두 편을 정리해서
 한글 파일에 옮겼다
 땀에 젖은 모래 알갱이 털어내듯 홀가분했다
 한 편씩 읽고 붙이기까지 했는데
 그것도 같은 내용의 꿈,
 시차를 두고
 또 한 번 꾸었는데
 깨어나자마자 생각날 듯 말 듯 해
 에어컨 기계음만 붙들고 있었다
 선명하지 못한 그 내용이 뭐더라 생각하면서
 두 편이 아니라
 한 편이었으면
 조금 더 기억해 내었을 텐데
 아쉽다
 흐릿한 문장들이 꾸물꾸물 기어 나온다
 전기밥솥 뜸 들 때까지
 꿈길에 발목이 걸러
 아예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 그것이 뭐라고
 배가 부르지도, 시원하지도 않은 것이
 나는 욕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꿈은 사막의 바람처럼 기억을 지우지만
 꿈길 바위틈에서 봤던
 포유동물의 뼛조각을 생각하며
 그 문장을 맞춰보고 있다
 내가 발 디딜 곳은 한 줄 시밖에 없을까
 찰나에 꿈 부스러기가
 사각사각, 떨어진다
 내 시는 늘 아쉽고 뜸 들지 않은
 밥알 같다










  

 박우담 시인
 2004년《시사사》로 등단.
시집『초원의 별』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