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하나의 여름도 없었다
김보나
백련과 홍련이 만발했다는 정원을
구경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인적이 드물어서
지도를 펼쳤습니다 안내를 따라가자
굴다리가 나오는군요
볕 한 줄기 자라나지 않은
어둡고 침침한 굴 앞에
서성이며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번 생에서 아직
반딧불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토록 어둑한 곳에 들어설
각오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빛이 귀해지는 굴길을 지나자
백련 한 송이,
물에 비친 그림자 한 송이
이내 눈앞에 지극하게 피어나던 아라홍련들
연꽃은 진흙탕에서 피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흙탕물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까
연꽃이 피는 계절은 여름
당신은 지금 몇 개의 여름을 간직하고 있습니까
김보나 시인
2022년《문화일보》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