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계단 정류소
이영혜
가파르게 올라온 강북04 마을버스에서
노인이 내린다
배낭은 축 처지고 등은 그만큼 앞으로 굽어 있다
달팽이처럼 돌지는 않고
직선으로 뻗은 계단으로
네 발 지팡이 절뚝이며 발걸음을 옮긴다
꿈을 품은 이들은
재개발 꿈의 숲 단지에서 다 내리고
노인은 더 높고 더 싼 집으로
숨 가쁜 등정을 시작한다
발아래 세상이 파노라마 뷰로 펼쳐지는
오래된 성채를 향해
천국의 계단 오르듯 한 계단씩 올라간다
북한산 영봉 위 구름 사이로 나온 저녁 햇살이
노인의 등을 슬며시 밀어준다
이제는 떨어질 일만 남은 생
그래도 올라갈 때가 좋은 거라고
축대에 만발한 능소화
저녁 바람에 흔들리며 응원하다가
하나둘씩 모가지를 꺾는다
이영혜 시인
2008년《불교문예》로 등단.
시집『식물성 남자를 찾습니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