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박일만
궁궐 같은
가슴을 파먹고 살았다
시절이 오가는 동안
뼛속을 파고드는 시곗바늘로
터지는 심중을 수없이 기웠다
몇 번의 계절에는 출가를 했다
내다보는 길목마다 이정표는 없고
세상 끝자락에 매달려
하염없이 외치다 목이 쉬었다
푸른 원피스를 고집하는 여자,
담장은 높고
목덜미를 곧추세운 죄 때문에
노란 얼굴에는 화장이 번졌다
몇 번의 계절에는 또 환속을 했다
긴 기다림이
제 속살을 다 파먹은 몸속에다
불면의 유충들을 가득 슬었다
박일만 시인
2005년《현대시》로 등단.
시집 『사람의 무늬』『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뼈의 속도』『살어리랏다』『사랑의 시차』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