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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호 Vol.39-박일만



 
 능소화

 박일만





 궁궐 같은 
 가슴을 파먹고 살았다
 시절이 오가는 동안 
 뼛속을 파고드는 시곗바늘로 
 터지는 심중을 수없이 기웠다
 몇 번의 계절에는 출가를 했다
 내다보는 길목마다 이정표는 없고 
 세상 끝자락에 매달려 
 하염없이 외치다 목이 쉬었다
 푸른 원피스를 고집하는 여자,
 담장은 높고 
 목덜미를 곧추세운 죄 때문에 
 노란 얼굴에는 화장이 번졌다
 몇 번의 계절에는 또 환속을 했다
 긴 기다림이 
 제 속살을 다 파먹은 몸속에다 
 불면의 유충들을 가득 슬었다










  

 박일만 시인
 2005년《현대시》로 등단. 
 시집 『사람의 무늬』『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뼈의 속도』『살어리랏다』『사랑의 시차』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