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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호 Vol.38-조온윤



 
 아키비스트


 조온윤





 두드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문을 열었어
 누군가 문틈에 끼워둔 햇빛이
 발밑으로 툭 떨어졌지

 쪽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네
 너무 오래 닫혀 있던 시간에 대해
 아무것도 밀고하지 않겠다는 듯이

 굴러갈 용기가 없어 멈춰 있는 공처럼
 웅크려 있던 밤에 대해서는 오로지
 나의 기록에 맡기겠다는 듯이

 나는 그 시간을 동면이라고도 적어보고
 반성이라고도 적어보았지
 무엇에 대해라고 묻는다면
 너무 오래 가두었던 그림자에 대해

 혼자서만 알고 있던 병명에 대해
 처음으로 비망을 하듯
 낯모를 미래에게 편지하면서

 낯모를 미래의 손뼉이
 어깨에 포개지는 듯한 온기에 놀라
 조용한 실내를 돌아보면서

 두드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문을 열었어
 실례한다는 말도 없이
 열린 문 사이로 들어와
 몸을 뉘고 있는 빛이 있었지

 그것을 주워 펼쳐볼 수 있다면
 단 한 번도 기록된 적 없는 시간이
 비로소 나에게 도착한 거라면
 이 말을 꼭 써두어야지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는 아이들처럼
 너의 외로움이 했던 일을 용서할게










  

 조온윤 시인
 201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햇볕 쬐기』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