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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호 Vol.38-이은주



 
 마지막 생파, 생선은 거절!

 이은주





 후, 마지막 생일 초를 끄자마자
 끌려온 곳은 일 인분의 관 속
 만족스러운 삶이었냐고 묻는다면

 저기요, 장난치지 말고 초코케이크 속에 갇힌 나를 꺼내주세요

 저는요 여름에 태어났고요 그즈음에 건물이 무너졌고요 나를 데리고 집으로 온 날 엄마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어요 (그 말을 삼십 년째 듣고 있어요 아, 이제 못 듣겠구나) 그리고 엄청 더웠다고 했어요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 물을 많이 마셔서 제가 눈물이 많은 거래요 아무튼 그래서 저는 여름이 별로고요 더우니까 달라붙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았거든요 근데 그 소원을 이렇게 이루어 준다고요?

 제가 과묵한 편이었다면
 더 오래 살 수 있었나요

 베란다에서 키우던 스킨답서스와 몬스테라 그리고 작은 콩란과 다육식물들
 제가 물뿌리개를 들고 칭얼거리던 날에는 흠뻑 젖은 화분들이 얼마 못 가 죽곤 했는데, 과습으로 뿌리부터 썩어버려서 엄마는 살릴 수가 없다고 했어요
 원래 도라지처럼 하얘야 건강한 건데, 제가 물을 많이 줘버려서 뿌리가 새까맣게 썩어버렸대요

 아
 진짜
 거짓말

 아예 물병에 담아놓고 키우는 수경 식물들은 뭔데?
 그 뿌리는 왜 썩지 않는 건데
 그럼 나도 이 관 속에서 꺼내서
 차라리 수장을 시켜줘

 (라고 하면 이건 좀 불효인가?)

 내가 아는 누구는 이런 상황에서 관을 박차고 일어나겠다고 했었는데
 우리 누릴 수 있는 거 다 누리고 그때 우리 다 같이 죽자고 했었는데
 물론 그게 걔는 땅과 건물이었고, 다른 애는 사랑이었고, 나는 뭐였더라
 차마 용기가 나지 않고, 이거 발로 차야 하나 주먹으로 쳐야 하나 고민도 되고
 사실 나 안 죽었어! 하고 일어난다면
 이런 세상을 또 살아내야 하잖아

 또 시를 써야 하고
 또 글을 읽어야 하고
 또 젓가락질도 배워서
 또 먹고 살아야 하잖아
 가끔 아무렇지 않은 건데, 항상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거잖아

 근데 이렇게 말하면
 거짓말이 아닌 인생이 어디 있어?
 사실은 내가 태어났었단 사실조차 거짓말이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깜짝 선물 따위는 받을 수 없겠지만

 음 
 그래서
 만족스럽냐고 묻는다면
 그냥 좀 그랬어요
 라고 두루뭉술하게
 대답해야 할 거 같아요










  

 이은주 시인
 2023년《포엠피플》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