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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호 Vol.37-권혁웅



 
네 개의 인도에 관한 이야기

 권혁웅






1. 동(東)은 위아래를 묶은 주머니(橐)

 그 주머니가 동쪽을 가리키게 된 것은 가차 용법이다
 나무에 걸린 해 따위는 없다 

 유럽인들은 인도와 인도차이나반도, 동남아시아의 여러 섬들을 묶어서 동인도제도라 불렀다 그들이 나라별로 세운 동인도회사는 일곱 개나 된다 칠무해(七武海, Seven Warlords of the Sea)*가 정말로 있었던 것이다

 이곳은 신들의 나라다
 인구만큼 많은 신들이 있다
 당신이 신의 이름을 잘못 발음할 때마다
 새로운 신들이 태어난다

 유럽인들은 바늘 끝에 몇 명의 천사가 앉을 수 있는지 논쟁했다 그처럼 신들은 머리카락 끝에도 앉을 수 있지
당신이 이발소에 다녀올 때마다 
수십 만의 신들이 북적거린다

 붓다는 생로병사와 슬픔에 대응하는 반대말이 있을 것이라 믿었고 이를 니르바나라 불렀다 니르바나는 ‘불어서 끔’이란 뜻이다 그것은 회복기 환자를 의미하는 ‘납부타’에서 왔다 그것은 열병을 앓던 환자가 회복할 때 느끼는 서늘함이다 

 동인도 지역은 아주 덥다
 에어컨이 켜진 실내에 들 때마다 니르바나를 체험할 수 있다 

 2. 서(西)는 얼기설기 짠 바구니 모양이다

 혹자는 둥지에서 머리를 내민 새끼 새의 형상이라고도 한다

 우두머리(chief), 바비큐(barbacue), 카누(canoe), 담배(tobacco) 등의 어휘를 유럽에 전해준 타이노어(Taino)는 사라졌다 카리브제도에 살던 타이노족은 콜럼버스가 처음 조우한 원주민들이다 콜럼버스의 착각 때문에 그들은 서인도제도에 살게 되었다 졸지에 아시아가 동인도가 되었다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이론을 믿었다
 그랬으면 계란을 그냥 굴릴 것이지 왜 구멍을 낸 거지?

 그의 뒤를 따라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로 건너와서
 수십만 명을 죽였다
 천연두가 그들 뒤를 따라와서 수백만 명을 죽였다
 그 자리를 아프리카에서 끌고 온 흑인 노예들로 채웠다

 1791년 백인들의 학정을 견디다 못한 
 아이티인들이 봉기했다

 진압하러 나선 프랑스군은 오합지졸인 흑인들이 자기들처럼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를 부르며 행군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실천하는 이들이 실은 적들이었던 것

 사실 프랑스군은 황열로 몰살했다 
 백인들은 유럽에서 가져온 천연두로 원주민들을 청소했지만
 아프리카에서 따라온 황열이 자신들을 청소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평등의 이념 아닌가
 한번은 동쪽으로 가르마
 한번은 서쪽으로 가르마

 3. 남(南)은 고리가 달린 동고(銅鼓)의 모양이다

 양(羊)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

 인도아대륙은 본래 곤드와나라 불리는 남쪽의 큰 땅덩어리의 일부였다 이 땅이 쪼개져서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와 오스트레일리아, 남극대륙이 되었다

 남미와 아프리카가 갈라선 부부라면 
 인도는 가출한 첫째다
 참 멀리도 갔다
 마다가스카르는 집에 남은 막내다 

 마다가스카르는 인도를 떠나보낸 남인도다 4세기부터 말레이-폴리네시아인들이 정착해서 지금도 다수를 차지한다 그들은 오래전 집을 떠난 후에 무려 3,500마일을 항해하여 옛 집에 돌아왔다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 거야
 무조건 달려갈 거야**

 바오밥이 이 모든 것을 보고
 여우원숭이와 함께 웃었다

 4. 북(北)은 등을 마주 댄 두 사람 모양이다

 남면(南面)한 왕이 등진 쪽이라서 북쪽이다

 북행하는 인도아대륙은 마침내 아시아대륙과 충돌했다
 그 결과로 히말라야산맥이 생겼으며 지금도 솟아오르는 중이다
 1년에 10밀리미터씩

 줄기러기는 인도와 티벳을 오가는 철새다
 줄기러기는 매년 높이뛰기 세계신기록을 경신한다 

 엄마, 나 작년보다 1센티 더 높이 날았어

 그러니까 북인도는 아직 도달하지 않은
 히말라야 너머에 펼쳐진 미래,

 인류가 도달할 미래는?
 다음 중 하나를 고르시오

 마왕이 다스리는 마세계(魔世界)
 인공지능 로봇이 지배하는 기율계(機律界)
 패러사이트가 번성하는 기생계(寄生界)
 타이탄이 어슬렁거리는 거인계(巨人界)
 대괴수가 출현한 대흉계(大凶界)
 외계인이 침략해온 천귀계(天鬼界)
 대자연이 날뛰는 폭록계(暴綠界)
 신인류가 인류를 멸시하는 신학계(新虐界)
 인간을 싫어하는 유일신이 다스리는 노신계(怒神界)
 저주가 임한 주멸계(呪滅界)
 게임에 빠진 폐인들이 우글거리는 유옥계(遊獄界)
 문명이 사라진 매드맥스인 무법계(無法界)
 세계수가 뒤덮은 대수계(大樹界)***

 지금만 아니라면 어디든 좋아요
 지금은 그 모든 천적들이 다 있거든요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워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 때
 그 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라고

 대마왕이 무법자, 패러사이트들과 함께
 노래하고 있어요



 * 『원피스』에 나오는 삼대세력 중 하나
 ** 「무조건」 가사
 *** 버서스에 나오는 다세계多世界
 ****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가사









  


 권혁웅 시인
 1997년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마징가 계보학』『소문들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세계문학전집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