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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호 Vol.37-김숙영



 
 포커페이스

 김숙영





 비밀을 안쪽에 숨긴 채로 나무는 천 년을 산다

 가지 끝이 예민하고 집요해서
 우주의 존재를 겨우 손금에 새기는 데도 흔들림이 없다

 그런데 당신은 하루도 못 버틴다

 단기 기억상실이 되어 일부를 지워도 좋으련만
 감정을 부추기고 일제히 파란을 일으킨다

 당신의 돌려 말하기는 처음부터 기묘한 역설이 아니다
 그저 쉽게 들켜버린 표정이다

 과열된 노이즈를 왜 자신만 모르는 걸까

 물속같이 캄캄하고 은밀한 것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살 떨리는 조바심을 삼킨 채
 참을성이 부족한 낮과 밤을 통과하면 편할 텐데

 때론 나무도 거리 두기가 못마땅할 때가 있다

 움직일 수 없는 비밀을 보내주기 위해
 바람에 몸을 잔뜩 뒤틀고 싶을 때도 있다

 나무는 문득 발아래 바위를 본다
 만 년 동안의 포커페이스를 읽는다

 한 번도 누군가에게 누설하지 않은 저 무겁고 단단한 침묵
 당신은 바위 속에서 반나절만이라도 살아야 한다

 가끔 비밀의 맛이 못 견디게 꿈틀거리면
 나무는 새를 날려 보낸다

 새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존재에게 슬쩍 속삭인다










  

 김숙영 시인
 2019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시집 『별들이 노크해도 난 창문을 열 수 없고』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