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증
김은상
필시, 내 몸속 어딘가에 자연이 깃든 것이다
폭우와 폭설로 진창인 북회귀선을 낳은 것이다
바람 한 점 없는 봄날에도 흔들리는 손,
샛바람과 마파람과 하늬바람과 삭풍이
제멋대로 손금을 침습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삶의 악천후는 지나갔다고
한껏 멋을 내고 당신을 만났지만
언제나 손들의 일기는 나보다 더 솔직해서
아무렇게나 술잔 속에서 흔들리다가
쏟아져버린 극지를 감출 수 없었니,
아! 재봉틀 위에 제 손바닥을 펼쳐놓고
가위를 쥔 어린 형의 손도 별자리였구나
고양이를 만나면 고양이를 돕고
새를 만나면 새를 돕던 이율배반의 등고선이
연야달다가 두고 간 나의 머리였구나
한 획 한 획이 똑바로 그어지지 않는 사랑,
어릴 적 바람개비로 뛰어가는 무덤 위에서
내가 도운 고양이가 내가 도운 새를 사냥한다.
김은상 시인
2009년《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유다복음』, 소설 『빨강 모자를 쓴 아이들』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