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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호 Vol.37 - 이시경



 
 사월

 이시경





 조로증을 앓는 아이가 흰머리를 움켜쥐고 버티다가 
 앙상한 다리가 녹아 하얗게 무너져내린다

 손과 발 온몸에 검정 꽃이 피는 속도가 고삐 풀렸다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의 외침은 이어지고
 선생님의 분필 목이 부러지는데
 공립학교 교과서 책장이 몸부림치다가
 갈기갈기 제 살을 찢어 땅 위에 뿌린다
 억 억 억 소리 나는 저 카인의 숫자들 
 어디나 깔린 망각 망각의 문자열
 거듭거듭 외치는 것을 이성의 체로 거르니
 해골이 붉은 줄무늬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다 
 경계가 아득히 흐물거리는 땅
 불의는 천사의 옷으로 갈아입고
 자유의 여신으로 부활하다니 

 아이는 어른을 어른은 아이를 탓하고
 지구는 흔들리고 별은 밤낮으로 빛 빛 빛나고
 분홍빛의 피범벅이 무한대와 사투 중에도
 바이러스는 변이 앞에서 절대 화를 내는 법이 없으니
 
 이 꽃길은 어느 변곡점을 알리는 은유인가?  









  

 이시경 시인
 2011년 『애지』 등단.
 시집『n평원의 들소와 하이에나』『라마누잔의 별 헤는 밤』『아담의 시간여행』『쥐라기 평원으로 날아가기』
 교양과학에세이집『수학을 시로 말하다』『과학을 시로 말하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