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 전람회*
유금란
그대는 기억하는가
그대는 아는가 그대는 꿈꾸는가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었던 그때를
제2관 모서리에 놓인 그림
어쩌면 나는 저 프레임 속의 나체 여인
내가 높은 무리에서 쫓겨 나와 이곳에 걸렸을 때
눈부시던 치마폭을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버텼지
그때부터였나
당신들이 내 눈빛을 피하고 내 몸을 보기 시작한 거
내 눈빛을 피하는 당신들을 내가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한 거
뚫어지게 바라보기는 심장이 닿는 가장 짧은 거리
나는 이 거리의 간격을 좋아하고
무한한 감정들이 흐르는 방에서
당신들을 관찰하는 일은 치열하고 투명했지
투명은 벌거벗은 신화의 비극
자 이제 진짜 코르셋을 벗어던져야 해
빛 온도에 다정함이 없잖아
내장을 그려 넣은 빛은 당당해야지
배경은 어둠이었고
관람자 1의 눈빛을 따라가다가
관람자 2의 눈빛과 합쳐지다가
이따금 내 눈동자는 프레임 밖으로 굴러갔지
백 년 전 내가 산업궁전 바깥으로 떨어져 나와 겨우 벽에 걸렸을 때
백 년 후의 당선 전람회가 시작된 거야
오늘도 여전히 당신들이 내 눈빛을 피하는 건
내 알몸 속에서 당신들의 다른 생을 분리하고 있는 거래
내가 더 많은 당신들을 관망하며
더욱 혹독한 빛으로 밤을 부풀리고 있는 것처럼
*1863년의 파리의 살롱에서 낙선한 작품들을 위해 개최된 특별 전람회.
유금란 시인
2021년《시산맥》으로 등단.
산문집『시드니에 바람을 걸다』『바다 건너 당신』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