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하고 천사하고
오성일
한 사내아이가 있었다
부모는 어려서 헤어졌다
그 뒤 엄마는 병이 나 죽었다
엄마는 경이라고,
노래를 잘하던, 어릴 적 내 친구였다
그 애가 결혼하는 날이었다
그 애는 입이 큰 아이였다
신부가 천사처럼 예뻤다
새 여자와 살고 있다는 아버진 오지 않았다
혼주 자리에 늙은 이모가 혼자 앉아 있었다
그래도 그 아인 웃고 있었다
입이 큰 아이가 바보처럼 벙싯벙싯 웃고 있었다
천사 같은 신부가 대신 울고 있었다
바보 같은 아이가 눈물을 닦아주었다
바보 같은 아이는 눈물 닦는 법을 잘 아는 아이였다
오늘부턴 천사하고 저 아이하고
헤어짐도 버려짐도 없는 데로 가서
운명이 따라오지 못하는 먼 데로 가서
운명 몰래 둘이서만 살라고,
깊고 외딴곳에 가 서로만 위하다 죽으라고
하얀 백합꽃이 놓인 테이블 위에
나는 가만히 젖은 손을 모았다
오성일 시인
2011년《문학의 봄》으로 등단.
시집『외로워서 미안하다』『문득, 아픈 고요』『사이와 간격』『미풍해장국』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