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의 시인
  • 이달의 시인
  • HOME > 이달의 시인 > 이달의 시인

2021년 11월호 Vol.05 - 조진태



조진태 시인

신작시 2, 근작시 3편, 시인의 말


신작시 2편ㅣ

  

연등

 

 

  

몸이 우주라면 손톱 끄트머리 새카만 점 하나는 작은 행성

 

푸르거나 파란 하늘의 계절은 고스란히 아침을 맞이하는데
긴 울음을 던지며 새벽 고샅을 누비는 녹색 신호등들
그게 신호등일까 아직은 극점에 도달하지 않았으니
숨 쉴 만한 하루의 시작일까 뒤척거린 밤은 고사한데

 

검은 봉다리 나풀거리며 심장을 찌르는 중
심장의 거기가 태양의 어디쯤 되는 걸까 몸이 우주라면
초롱 초롱 푸르거나 파란 바다의 물빛은 아직 몸의 조명등
그곳은 멀쩡하다니까 그럭저럭 우주의 하루가 머물고 있기도 할 듯

 

메마른 단풍이라도 회백색 흑발로 정수리에 붙어있어
떠나지 못한 긴 울음의 뻐꾸기 주둥이로
통풍의 겨울바람을 이겨내는 것이라
그 어디쯤이 대폭발 전인 좌측 폐이러니 잘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
몸의 거처인 지구라는 행성이 아직은 흑색종이라는 새 이름을 달지 않고
형형색색으로 튀튀한 자태를 뽐내지 않아서 다행

 

  

      

그날은 언제든지 그 이후이므로

 

      

 누군가는 잠을 이루기 위해 동굴의 시간을 허둥거리고
누군가는 피로 쓰인  타인의 시간을 제 것으로 떠들어대고 
그리고 누군가는
살아있음의 밝은 날의 회색빛 정수리를 힘겹게 쪼아 먹기도 한다

 

날마다 애써 외면하는 이 일, 대체로 입을 가진 자는 말이 없다

 

가라앉은 자의 지워진 입술에 귀를 대고 조아린 밤이 지나
동트는 아침의 기지개가 자분자분 하루를 시작하고
잘 씻긴 젓가락 한 짝과 숟가락 가지런한 흰 쌀밥과 된장국 한 그릇
고스란히 땀에 젖은 하루의 신발을 댓돌에 올려놓고
아무 일 없는 저녁의 밤을 혼곤하게 누워서 바라보는 나날들
부음 없은 자들의 말없음으로 떠도는 인간이라는 사건의 진상들
그러나 가라앉은 자들의 이름은 어떻게 호명될까

 

날마다 대면하는 이야기들, 들을 수 없는 귀를 가진 자는 호사스럽다

 

운명일까, 수치를 모르는 자들의 영웅담을 곰곰이 들어야 하다니 
다른 모두는 관객이거나 들러리이거나 치장의 도구
게걸스러운 입담에 묻어나는 탐욕의 부스러기들
잠시의 세상 밖에 처참하게 문드러졌던 날들은 불멸의 훈장 같은 것
모두는 아무도 아니거나 자기만의 모두
가라앉을 줄 모르는 저 불어터진 입술이여 꽉 막힌 귓구멍이여
피의 명예도 공치사의 탐욕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함들이여 그럼에도 지나온 시대의 한 기둥이여

 

나날이 새로워야 할 그날 이후,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돌아올 수 없는 곳에 내팽개쳐진 말하지 않는 자들의 입을 열어야 하거니와
아우성 속에서 청색의 물음이 미동하는 아침과 저녁이 있으므로
듣는 땀과 말할 수 없음을 말하는 노동의 끈질김이 있을 것이므로
모두의 그날은 이후의 나날로 살아있을 것이므로

 

다만, 이 선택이 지겨움과 분노가 아니라
일말의 설렘과 희망이라는 선택의 나날이 되기를

 

 

 

 

 

ㅣ근작시 3편ㅣ

  

더 많이 왼쪽으로 더 많이 오른쪽으로

 

 

오른쪽 골반이 틀어졌다
쪼그라든 허벅지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별 수 없다
좌향좌에 익숙한 왼쪽 눈빛 탓일까 중얼거리며
몸의 왼쪽과 오른쪽의 중심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녹내장을 앓고 난 뒤
청맹과니라는 당달봉사가 바로 이것 이었구나 스스로 무시무시해져서
흐려진 사물과 희부연 한 창공도 애써 그러려니
흩어진 그리움과 사라지는 경계도 애써 그러려니
청년이 죽고 젊은 사촌이 세상을 떴다 해도 그러려니
그러려니 그러려니 둥글둥글해져서
무심한 살 처분의 나날들이 피의 흔적도 없이 다시 사라져가는 나날들


노을도 어둠에서는 푸른 안개가 되는구나
푸른 안개가 동쪽 하늘의 별을 노랗게 채색하는구나
어느 날 주로 왼쪽 눈을 사용한다는 안경사의 진단결과를 받아들고
제기럴 왼쪽 눈에 녹내장이 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그러고 보니
푸른 안개와 노란별은 녹내장 든 왼쪽 눈의 흔적들


낡은 신체를 움직여 내일의 하루를 이루려면
틀어진 골반과 청맹과니 눈의 사용법을 가라사대
더 많이 왼쪽으로 발걸음을!
더 많이 눈동자를 오른쪽으로!
이겠다

 

    

 

이것은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당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끄러움을 양식으로 삼아 당신에게 바치던 헌사는 과거의 일입니다.
당신의 헌신과 희생에 기대어 오지 않을 세상의 희망을 비춰보던 시간들은
40년이나 50년 전의 전설 같은 일입니다.
믿었던 것은 역사라는 관념의 성채뿐이었지만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야 인간일 것인지를 고뇌하던 때
죽음으로도 꿈을 꾸던 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당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과거를 팔아 제 잇속을 챙기는 장사꾼들은 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성스러운 그날을 조롱하는 패거리를 규탄하는 당신의 입속에
그들은 자신들의 집을 지었습니다
망월의 신성함이 모든 것을 용서하던 숭고의 시대를 등에 업고 
조아리지 않는 모든 것들의 면상을 갈겨버리는 모성의 감각을 극단화한 그들로부터 
무엇이 돈이 되는 것이며 무엇이 시장에 내다 팔만한 상품꺼리가 되는지를
그들은 거룩한 성부의 위선에서 기민하게 알아차렸습니다.

 

이것은 당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의로움과 인간의 존엄에 대한 투신의 기억은 빛바랜지 오래
모든 그날이 자신만의 시간이라는 듯 침 튀기며 진열대에 올려놓고
명예라고 명명한 돈다발을 흔들며 젊은이들을 꾀는 호객담은 
이름없는 얼굴들을 직조하여 당신만의 설화와 신화로 잘 짜낸 화려한 사회극
쉬파리들 꾸역꾸역 몰려들어 알을 스미는 쉰내 나는 고봉밥 한 그릇

  

이것은 어쩌면 당신과 당신을 닮은 숙명 같은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이야기였다가 더 이상은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없는 
세속의 국밥집 식탁에서 공포를 살아낸 장삼이사
시시껄렁 걸쭉하게 입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깨진 만년필과 설렁탕 한 그릇

 

 

만지작 만지작거리다가 끝내 다시 품안에 꽂아놓는 만년필이 한 자루 있습니다.
바스라지게 조각난 뚜껑은 얼마 전 깨져버린 무릎 슬개골을 닮았습니다.
강력 풀로 이음이음 붙여놓은 뚜껑을 눈여겨보면 못 박아서 철사로 묶어놓은 내 왼쪽 무릎처럼 기이합니다.


1980년 이후의 날들은 21세기가 목전에 오면 최소한 절망의 끄트머리 시대 정도는 될 거라고  위안했었지요.
그 2000년도 막 지나 몸은 잡스런 욕망 속에 기쁨과 슬픔이 얼기설기 엮인 채로 미숙한 중년을 서투른 일상으로 오가며 세상에 물들어 갈 때
그 즈음에 깨진 만년필이 웅숭그리고 있습니다.
어느 날 뭔 일인지 화가 잔뜩 난 어머니라는 이름의 역사적 고전들이 몰려와서 무엇이든 들입다 엎고 쥐 흔들었습니다.
아들의 이름이 새겨진 만년필이 속절없이 바닥을 뒹굴며 짓밟혔습니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분노는 그날들의 멱살잡이로 사그라진 것이 아니라
증오를 동반한 두렵고도 무서운 고전적 감각을 지닌 거인으로 거듭났습니다.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그날의 조각들 조각조각 찢기는 기억의 신체들
27일의 새벽 눈망울을 품은 회백색의 빈 공간에 떠도는 푸른 영혼은 외마디 먹색으로 허우적이거나 뒤척입니다. 


2020년 오월의 늦은 오후 명덕식당 1층 귀퉁이에 앉아서
그럼에도 희망은 밥 숟가락 설렁탕 한 그릇이라고 어렵게 끼적이는 중인데 
금남로 어디쯤에선가 지나쳤을까 중년 남성과 잔주름 여인네 둘
그윽한 눈으로 식탁 모서리를 두들기며 설렁탕 값을 내어놓고 명덕식당 주롱을 나갑니다.
 
푸른 오월의 기억을 타고 파란색 잉크 한 방울
말간 설렁탕 국물에 뒤섞이며 걸걸한 연대로 들어선 아들의 시절과 함께
아득한 신기루처럼 눈가에 젖어듭니다. 

 

 

 

     

시인의 말

 

 

왜 쓰는가

     

 

 

    시는 삶의 행동과 실천에 부응한다는 믿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삶은 얼마나 많은 좌절과 통탄으로 흔들렸던가. 세상은 어차피 비극이었고 그 비극을 살아내기란 그 역시 고행의 길이라는 것. 그리고 그 실존의 그림자는 늘 슬픔이라는 자각이었다. 그러니까 언어가 주는 아름다움은 뒷전일 수밖에. 그러므로 나의 시는 항상 불만이었다. 그래도 시라면, 감각적이고 곰살맞기도 하며 가락으로 요동치는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가슴을 치는 누군가의 시를 만나면 숨죽이며 감격했더랬다. 그러므로 쉽게 쓰고 싶지만 쉽지가 않고 저잣거리의 감성으로 장삼이사의 이야기가 넉넉하면 좋겠구나 싶지만 제대로 되지가 않았다. 차라리 쓰는 동안이라도 내가 모를 나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다면 다행이리라 여길 뿐. 그리고 내가 쓰는 시라는 것이 익명의 누군가 우연히 읽다가 그의 생각과 상처와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진태

   1984년 무크지『민중시』로 등단.
   시집 『다시 새벽길』『희망은 왔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