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대 에세이
  • 연재 에세이
  • 연재 에세이
  • HOME > 에세이 > 연재 에세이

2021년 9월호 Vol.03 - 전기철


 [ 현대선시읽기 3 ]


안간힘의 언어


김광섭  「마음」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나리고

숲은 말없이 잠드나니

 

행여 白鳥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선사禪師의 시와 시인의 시는 그 출발에서부터 다르다. 선시의 입장에서 봤을 때 선사가 언어 밖에서 대상에 접근한다면, 시인은 언어 안에서 대상에 접근한다. 다시 말해서 선사가 모든 언어를 멈추게 하는, 독자를 멍하게 하는 시를 쓴다면 시인은 언어 안에서 라고 하는 주체를 선쪽으로 끌고 가려 한다. 그만큼 시인의 선시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내려놓으려는 데에 안간힘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선사에게는 본래 없는마음을 시인은 내려놓으려 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건 뜻, 곧 정을 내려놓음이다. 선사의 마음이 언어로는 미치지 못하는 데에 있다면 시인의 마음은 언어 안에서 흔들린다. 마음에는 여러 층이 있다. 현실을 사는 시인에게 그것은 대부분 욕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마음의 층을 벗겨내면 공()한 본래마음이 있다. 따라서 시인은 본래마음에 이르기 전의 마음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욕망으로 되어 있는 마음을 내려놓아 본래마음에 이르고 싶은 시인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자신을 본다. ()을 향한 그 흔들리는 마음이 리듬을 타는 언어를 만나면 선시가 된다. 따라서 시인의 선시는 그 흔들리는 마음을 내려놓으려는, 언어 안의 표현이다. 그 언어 때문에 시인은 잔머리를 굴리기 쉽다.

 

시인이 잔머리를 굴리면 기교가 많아지고 말들이 비틀린다.

 

김광섭은 적어도 위 시 마음을 통해서 잔머리를 굴리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것은 시인의 안간힘으로 나타난다. 마음은 본래 고요한데,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진다. 돌을 던지거나 고기를 잡거나 노래하는 사람이나 자아가 있다고 느껴 외로움을 타는 밤에 별이나 숲은 아무 뜻 없이 고요하다. 그것들은 본래마음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백조가 날아와 마음이 흔들릴까 두려워 꿈을 덮는다. 여기에서 백조는 본래마음인데 시인의 욕망이라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꿈 또한 잡상雜想이다. 그리고 물은 흔들림 없는 본래심이다. 그래서 시인은 기교와 시의 수사를 최대한 자제하려는 측면이 엿보인다. 하지만 시인은 시적 기교를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마음이라는 욕망을 내려놓으려는 안간힘 때문에 절대자유가 방해를 받고 있다. 이 시와 함께 읽어볼 시로 시인의 저녁에가 있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나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 시를 대개 인연설이나 윤회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보다는 있는 자리 그대로의 모습, 삶이 보인다고 해야 할 것이다.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보고, 내가 별을 바라보는 것은 인연이 아니라 본래의 의미로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그것은 2별은 밝음 속에서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서 사라진다.’라는 표현에서 드러난다. 별과 나는 무심의 경지 속에서 본래 그대로 사라지고 나타나는 존재이다. 분별 밖에 있다. 그렇게 볼 때 3연의 너와 나의 만남은 현상 속의 만남이라기보다는 본래심本來心으로서의 분별없음에서의 만남이다. 우리의 몸은 사대四大(地水火風)로 이루어져 있어 생명 원리에 따라 흩어졌다 만난다. 따라서 이 시에서 만남은 생명 원리의 본질이다.

김광섭 시인의 선시는 마음의 본래적 성격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언어 안에서, 다시 말하면 흔들리는 마음, 주체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주체는 현상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고요하게 할 때 시인은 언어 안에서 선 쪽으로 나아간다. 이 시의 한 구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화가 김환기와 작가 최인훈에게 모티프를 제공한 것도 그와 같은 본래마음에서의 만남을 그리워 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는 이렇게 정다운에서 찾을 수 있다. 본래 우리는 모두 정답다. 나무와 새와 물과 우리는 본래 정다운 관계에 있다.

 

 

 

 

  

전기철

 

   1988년 『심상』 등단.

   시집 『나비의 침묵『풍경의 위독『아인슈타인의 달팽이『로깡땡의 일기,  누이의 방등이 있음.

   2015년 현대불교문학상,  2019년 이상 시문학상을 수상.

 

 19년 이상 시문학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