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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호 Vol.31 - 김관용



 불안한 낙서
 도시질감
 아론 시스킨드 

  김관용






 얼어붙은 걸 보니 저것은 피의 책이 맞습니다
 한밤중에 또 눈을 떴습니다 
 누군가의 소리를 받아 적다 보면 무엇을 적은 건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내면의 풍경이니까요 
 혼자 있으려니 무너지는 걸까요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모아보면 내가 됩니다 
 당분간이겠지요 
 혼자라는 건 마법이니까 
 불안해질 수 있는 거니까 
 불안한 날들을 연기하는 겁니다
 가지마다 수액를 주렁주렁 매단 나무의 태몽
 한숨을 뱉고 한숨을 마시고 숨이 차서 공사장 철문을 녹아내리는 녹물
 행복에 겨운 시간
 닫혀 있는 시간
 보이지도 않는 태양이 끈적하게 흐릅니다 
 그건 아직 마르지 않는 물감이지요 
 붓으로 묻힌 영혼입니다
 이마를 만져봅니다 
 순수라는 말이 혀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혀에서 떨어지지 않는 말은 그대로 혀와 함께 허공입니다 
 발음된 적 없으니까요
 황량하고 고즈넉한 눈빛과 참담한 심장을 가진 음악이 걸어갑니다 
 얼마쯤 걸어가다 이쪽을 돌아봅니다 
 눈치를 보는 건 무서운 일입니다 
 당신과 나의 경계가 생기는 일이지요 
 왼발과 오른발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눈 덮인 나의 인가는 얼마나 더 오래 당신에게 가는 길이 되려는지
 한숨이 붉습니다 
 몽환적인 숲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당신을 겨누는 것입니까
 무너질 자격이 충분합니다
 세상에 없지만 들은 대로 적어봅니다

 







  

 김관용  시인
 2015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