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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호 Vol.31 - 천세진



 풍선을 잃는 일 

  천세진






 얼굴이 까맣게 탔네요. 당신은 얼굴이 더 뽀얘졌군. 그런 얼굴로 우리 마주앉았다. 수많은 달력이 각자의 이력 속에서 불태워진 뒤여서 할 말이 없었고, 남아 있다고 생각했던 말들은 줄 놓친 풍선이 되어 날아갔다.

 그리고 생각났다. 최초로 울음을 터뜨린 것이 풍선을 놓친 때였다는 걸, 돌아오지 않는 것이 있다는 걸, 절망을 그때 배웠다는 걸. 

 연줄이 끊어졌을 때는 울지 않았다. 풍선처럼 멀리 달아나지 못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연을 날렸으니까.

 까만 얼굴과 뽀얀 얼굴을 하고, 풍선을 놓친 마음으로 앉아 있었을까, 연을 놓친 마음으로 앉아 있었을까.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강 건너편을 그리워한 사람은 깊은 강을 건너려고 수영을 배우는 동안 그리움의 말을 잃는지도 모른다. 빠져 죽지 않는 법을 배우는 동안 건너려던 이유를 잃는 일이 어째서 일어나지 않겠는가.

 어떤 시간이 얼굴을 까맣게 태우고, 뽀얗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미녀와 야수나 천사와 악마를 떠올린다 해도 그보다 두렵진 않을 것이다. 깊은 강을 힘겹게 건너가, 얼굴을 바꾸어버린 시간을 마주하고 풍선을 또 잃는 것보다.

 








  

 천세진  시인
 시집『순간의 젤리』『풍경도둑』, 소설『이야기꾼 미로』, 문화비평서『어제를 표절했다』가 있음